한정된 자원 '주의력' 마저 스마트폰에 빼앗겨
발전하는 기술력에 의존할수록 지적능력 퇴보
인류문명 종말 초래 휴대전화 잠시 거둬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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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 최대의 봉제완구 생산국이었다. 전 세계 교역량의 70% 이상을 한국산이 차지했다.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테디베어'나 '산타베어'같은 곰 인형들이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뉴욕 백화점의 윈도를 점령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어린이를 위해 개최한 백악관 연말파티에 한국산 곰 인형을 안고 나타났다. 미국과 서유럽 어린이들의 로망이 생일이나 연말에 테디베어나 산타베어 선물을 받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있는 집이면 곰 인형 한 마리씩은 꼭 있었다. 곰 인형을 끌어안고 공감과 상상의 힘을 키웠다. 그런데 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완구가 아이들의 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테디베어나 산타베어가 떠난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이제 최첨단 디지털완구, 스마트폰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버려둬도 되는 것일까.

지난 7일자 월스트리트저널 '토요 에세이'에 주목할 만한 글이 실렸다. "스마트폰은 어떻게 마음을 납치하는가(How Smartphones Hijack Our Minds)"라는 제목이다. A4용지 7장 분량의 글은 스마트폰과 인간 지적 능력의 상관관계를 다룬 여러 실험들을 인용한다. 재작년 미국 텍사스대학의 인지심리학자 아드리안 워드 교수와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 캠퍼스(UCSD)의 연구진이 UCSD 학부생 520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실험을 했다. 어떤 일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가용인지능력'과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 '유동성 지능'에 관한 것이었다. 유일한 변수는 스마트폰과 피실험자의 거리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스마트폰을 눈 앞 책상 위에 둔 학생들은 나쁜 점수를 받았다. 스마트폰을 아예 다른 방에 두고 온 학생들의 점수가 높았다. 주머니나 핸드백에 넣은 학생들의 점수는 중간이었다. 지난 4월 한 저널에 발표된 아칸사스 대학생 1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선 스마트폰을 지닌 채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성적이 스마트폰을 강의실에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의 성적보다 나빴다. 작년 영국의 91개 중학교에서 실험한 결과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면 학생들의 시험성적이 올라갔다. 특히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우리의 지적 능력이란 것도 결국 한정된 '주의력 자원'이 적절하게 할당된 결과인데 그 한정된 자원을 스마트폰이라는 녀석에게 먼저, 그리고 대부분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의 생각과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워드 교수팀은 일상생활이 스마트폰으로 통합되는 현상이 학습, 논리적 추론, 추상적 사고, 문제 해결, 창의력 등 중요한 정신적 능력이 감쇠되는 이른바 '두뇌 고갈(brain drain)'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두뇌가 스마트폰의 발전하는 기술력에 의존하면 할수록 인간의 지적 능력은 퇴보한다는 경고다. 스마트폰은 이미 언제든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납치(hijack)'할 수 있는 초정상자극(supernormal stimulus)이 되어 버렸다. 스마트폰에 빠진 보통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얻는 정보를 마치 자신이 생산한 정보처럼 느낀다. 재갈매기가 자신이 낳은 진짜 알보다 더 크고 알록달록한 알을 더 열심히 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른들이 그러할진대 아이들의 경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스마트폰은 인류문명의 결정판이지만 동시에 인류문명의 종말을 초래하는 단서가 될 것 같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의 손에서 조용히 스마트폰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대신 그 작고 여린 손에 곰 인형 한 마리씩 들려주는 것이다. 내 아이가 1등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류문명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