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미사일 도발 강도 높이고
미, 북에 군사적 압력 '긴장 고조'
이 틈에서 한국정부 갈팡질팡
아무 대책없이 선택 수용 한다면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아

이 틈에서 정작 한국정부는 갈팡질팡한다. 정부는 북한에 800만달러를 지원하면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하여 지속 추진'하겠다고 하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조기에 분쇄하고 북한을 재기불능으로 만들 힘이 있다"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반면 야당은 '코리아 패싱', '무기력 행정부', '환상에 빠진 청와대' 등으로 거칠게 비판하면서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 전시작전권 환수 재고 등을 거론하면서 대북 압박과 제재를 주문한다.
사자와 하이에나의 틈바구니에서 양과 여우의 전략이 다투는 형국이다. 그러나 양과 여우가 기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일단은 공식적인 정책결정자도 안보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의 말에서 찾아진다.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교수는 "한미 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북미간 우발적, 계획적 충돌과 핵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소설가 한강은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NYT 기고문에서 "평화가 아닌 어떤 해결책도 의미가 없고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는 구호일 뿐"이라고 절규한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즐비한 우리나라에서 한국, 나아가 한반도가 핵전쟁으로 맞게 될 파괴와 절멸의 위기에 대응하여 그 어떤 헤게모니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촛불혁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를 다시 되뇔 때가 아닌가 싶다. 그 때는 국정농단과 같은 내우를 한탄하는 말이었다면, 이제 외환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정파적 대결이 횡행하는 상황을 질타하는 말이다. 나라의 백성과 강토가 사라지거나 이제껏 이룩한 정치경제적 발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형국에서 나라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인 생존전략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살고 있다면 '상상의 공동체'로서 나라는 이미 해체된 거나 다름없다. 이런 일이 한반도의 21세기에서만 나타나는 상황일까?
임진왜란 1년 전에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은 일본의 동정에 대해 상반된 보고를 한다. 정사 황윤길은 '필시 병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하였지만 김성일은 '그러한 정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민심을 동요하게 한다'고 상반된 보고를 올린다. 정파적 이해가 다르더라도 그 실낱같은 가능성이 일본의 조선지배를 초래할 일이었으면 조선의 집권세력은 병란을 대비했어야 했다. 불과 40년 후에 일어난 병자호란도 나라의 생존을 둘러싸고 이해를 달리하는 척화파와 주화파 간의 대립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쟁론만 벌이다가 백성들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 강토는 유린되고 왕은 굴욕을 당한다. 나라의 생존이 무엇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만 있었더라면 임진왜란 이후 전쟁에 대비하고, 명분만 앞세워 강력한 적에 맞서는 우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북분단이나 한국전쟁의 상황에서도 이러한 적전분열의 양상은 다르지 않았다.
전근대시대라면 인접국과는 동맹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북한이나 중국과는 적어도 적대관계를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오랜 냉전으로 굳어진 대립관계를 우호적 관계로 돌리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전국시대의 진나라나 신라처럼 원교근공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기에는 미국도 중국도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동북아 균형자론은 상황인식도 주제파악도 안된 공상처럼 들린다. 이 시점에 마키아벨리라면 미국과 중국,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는 형국에서 어느 한쪽을 명확히 선택하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그는 인접한 두 강국이 싸우는 형국에서 중립은 결국 궤멸을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립하는 두 국가들이 전쟁으로 갈지, 현상유지로 갈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그 결과가 북미간의 빅딜이건, 미중간의 빅딜이건 간에 한국이 한반도 운전자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마키아벨리라면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방법이 최악이라고 말했을 것이고, 서로 다른 전략으로 우왕좌왕하는 것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을 것이다. 아무런 입장이 없어서 패싱 당하고 남들의 선택을 수용해야 하는 나라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이게 나라냐?"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