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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장 김창수' 스틸컷


옥살이 감옥 터 찾기 어렵고
동상은 '산비탈 외진 응달'에
탈출로 복원, 극소수만 관심
市 '백범일지'부터 살펴봐야


백범 김구(1876~1949)의 인천에서의 감옥살이를 다룬 영화 '대장 김창수'가 지난 19일 개봉했다. 백범의 옥살이, 외국인 전담 재판소, 축항(築港)과 경인선 철로 부설, 인천 우편국의 전보 취급, 모친의 옥바라지, 인천 사람들의 적극적인 후원 등등. '대장 김창수'는 어느 모로 보나 '인천 영화'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대장 김창수'는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인천의 문화 정책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천은 국민적 인물인 백범 김구와 관련한 중요 장소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백범이 옥살이한 감옥 터는 일반인이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고, 백범과 그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이 인천대공원에 나란히 서 있기는 하지만 산비탈 외진 응달에서 제대로 아침 햇살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다.

축항 노역장이나 감옥에 갇힌 백범을 후원한 인천 사람들의 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 백범의 탈옥 직후 인천에서의 탈출로 복원 문제는 극소수의 민간 연구자만이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인천은 백범 김구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인천에서 감옥살이를 하면서 독서를 통해 신문물에 눈을 떴고, 강화도를 비롯한 인천의 여러 인물들이 가산을 탕진해가면서 백범의 옥바라지와 석방을 위해 애를 썼다. 그 뒤로 이름마저 '김창수'에서 '김구'로 바꾸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 백범은 인천에서 새롭게 탄생했다고 할 수가 있다. 인천은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숨진 서울 경교장만큼이나 중요한 장소다.

백범과 인천의 연관성은 다양하고도 특색 넘치지만 인천시에서는 그동안 이와 관련한 체계적인 연구를 지원하거나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거의 펼치지 않았다.

영화 '대장 김창수' 개봉을 계기로, 인천시는 '백범일지'의 인천 관련 대목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구가 쓴 '백범일지'는 뛰어난 역사적 기록이자 문학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여러 곳에서 오류를 발견할 수가 있다.

'백범일지'의 인천 관련 내용의 역사적 사실 관계부터 인천시가 나서서 바로 잡고, 이를 전국적인 관심을 유도할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