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큰 별,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대부를 황망히 잃던 날, 가을 하늘은 더없이 맑고 선선하였다.
인천은 물론 전국의 경제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이수영 회장이 누구인가? 1970년 당시 화학산업의 선두주자였던 동양화학(현 OCI의 전신)의 전무이사로 입사해 과감한 경영적 판단과 다각적 경영능력으로 재계 24위의 기업군을 일군 주역이었다. 이후 1979년 사장, 1996년 회장으로 취임해 최근까지 회사 경영을 총괄하여왔다.
고인은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특별히 강조한 참 경영인이었다. 2012년 OCI는 당시 1천822개 상장기업 중 회계투명성이 가장 높은 기업에 주는 투명경영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004년부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으로 추대돼 2010년까지 세 차례 연임하고 돌아가시는 그 날도 명예회장직을 수행 중이었다. 경총 회장을 역임하실 때에도 재계뿐 아니라 회사 경영에도 노사화합을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파업 없는 사업장을 운영해 왔고, OCI는 한국의 대표적인 노사화합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고인은 인천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선대에 이어 동양화학을 이끌어 인천의 향토 대표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역시 선대(10대, 11대)에 이어 2001년부터 2004년(17, 18대)까지 인천 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인천경제를 한 차원 도약시켜 준 상징 인물이다.
기업인의 표상이 되어준 탁월한 인품과 철학을 인천 경제인들은 모두 기억하고 존경하고 있다. 또한 인천 송도학원의 송도 중·고교를 운영했고, 송암문화재단을 통해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해 장학지원 등 선행을 많이 하셨다.
필자하고도 인연이 있다. 고인이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이었고 나는 구청장직에서 물러나 있는 시점이었다. 어떤 인연으로 상근부회장직을 제의받고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조선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내심 결정이 되었나 보다 하고 나가보니 고인이 난처한 얼굴로 두 시간이나 간곡하게 상근부회장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것이다. 그때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궁금하였지만 겸손하고 완곡한 고인의 태도에 그냥 알았다고 하였다. 그 후 상근부회장은 당시 정무부시장이 임명되었고 나중에야 그 깊은 까닭을 알게 되었다.
기업인들이 모두 욕을 먹는 것은 아니다. 욕먹는 기업인과 욕먹는 기업은 자연히 도태되기 마련이다. 고인은 '사람이 곧 기업'이라는 창업정신으로 "남에게 피해 줄 일, 욕먹을 일은 애당초 하지 말라. 돈을 버는 일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라는 말을 항상 강조했다고 한다. 존경받는 기업인의 자세를 선대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리라.
하늘은 필요한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는데 그쪽도 경제가 심상치 않은 모양인가. 아직 하실 일이 산 같은데 너무 빨리 떠나신 것 같아 비보를 듣고 한동안 멍하였다. 고인의 참 바람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운영일 것이다. 그 뜻을 기려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참다운 모습을 대를 이어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천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계에 끼친 고인의 깊고 넓은 업적을 기리며 침체된 경제의 불씨를 되살리는 것은 이제 산 자들의 몫이 되었다. 삼가 이수영 회장님의 명복을 빈다. 고이 잠드소서.
/신원철 (사)인천연수원로모임회장·前 연수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