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401001264200061621.jpg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2015년과 2016년에 두 자릿수 증가율로 늘었다. 지난 6월 말 현재 규모가 1천388조 원이다. 올해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 연말에1천450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

정부는 부채의 증가율 자체가 높은 데다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과 비교해도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금리 상승의 충격을 견디지 못할 취약계층의 부실화 등 단기적 위험을 먼저 예방하고, 중장기적으로 부채 규모를 안정화하면서 구조를 개선하는 쪽으로 24일 가계부채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규제와 지원, 즉 '당근'과 '채찍'을 들었다.

경제 성장에 따른 부채 증가는 어쩔 수 없지만, 지나친 증가율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기 전인 2005∼2014년의 연평균 증가율(8.2%) 아래로 낮추기로 했다.

채찍으로 든 게 현재의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개량한 신(新) DTI다. 주택담보대출을 2건 이상 받을 경우 기존 대출의 원리금이 모두 상환액으로 잡힌다. 기존에는 이자만 상환액으로 잡혔다. 이 같은 다주택자의 2번째 주택담보대출부터는 만기가 15년으로 제한된다.

여기에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이 병행된다. DTI는 일정 비율을 넘기지 못하는 행정규제지만, DSR는 금융회사들이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여신관리 지표다. DSR를 따져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전면 도입 시기는 2019년에서 내년 하반기로 당겨졌다.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에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등에 담보인정비율(LTV)과 DTI를 40%로 일괄 하향 조정한 상태다. 내년부터는 신 DTI와 DSR를 통해 자금 공급을 더 조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가계부채의 증가율이 매년 0.5∼1.0%포인트 낮아지는 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했다.

자영업자 160만2천 명의 부채 521조 원도 집중적인 관리 대상이다. 자영업 대출 가운데 부동산임대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형 자영업자는 그 자체로 부채 증가 요인일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 쏠림을 유발한 장본인들로 지목됐다. 정부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도입 등 채찍을 쥐었다.

다른 한 손에는 지원책이 들렸다.

부채 억제는 긴축의 고통이 수반된다. 그 고통은 저소득·저신용 등 취약계층이 더 먼저, 더 크게 겪는다. 특히 금리 상승이 눈앞에 다가온 시기다. 정부는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출자별 특성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가 있는 1천91만 가구 중 DSR 40% 이하, 자산대비 부채비율(DTA) 100% 이하인 746만 가구(A 그룹)는 상환능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들의 부채 724조 원은 안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DSR 또는 DTA가 각각 40%나 100%를 넘으면 소득(자산)은 충분하지만, 자산(소득)이 부족한 'B 그룹'으로 분류했다. 313만 가구에 525조 원이다.

DSR 40% 초과에 DTA 100% 초과는 소득·자산 모두 부족한 'C 그룹'이다. 이들 32만 가구의 부채 94조 원은 부실화 우려가 있다. 이와 별도로 이미 부실화해 상환이 불가능해진 부채(D 그룹)는 100조 원으로 추정됐다.

정부는 B∼D 그룹을 연체 여부나 대출 종류, 상환능력 등을 따져 지원하기로 했다. 최장 3년의 채무조정(원금상환 유예)과 법정 최고금리 인하 등으로 연체 발생을 예방한다. 이미 연체가 발생한 대출자는 가산금리 인하와 담보권 실행 유예로 지원한다.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부채 가운데 소액(1천만 원 이하)·장기(10년 이상) 채무는 상환능력을 심사해 탕감하거나 깎아준다.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생계형·일반형 자영업자는 1조2천억 원 규모의 가칭 '해내리 대출' 재원을 마련해 지원한다. 일시적인 자금 부족을 겪는 자영업자는 이자를 감면하고 원금상환을 미뤄준다.

정부는 가계부채가 당장 심각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은 작지만, 증가세를 잡지 못하면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져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단기적인 성장률을 염두에 두다 보니 예상만큼 강력한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의 상황을 살핀다면서 대책의 발표 시기를 여러 차례 미뤄온 점이나, 정부가 최근 3% 성장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다.

특히 '기득권'은 역시 건드리지 못했다. 규제 측면에서 핵심으로 꼽히는 다주택자 대상 신 DTI 규제의 경우 신규 대출부터 적용된다. 기존 다주택자는 대출을 더 받지 않을 경우 만기 연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올해 초 은행권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서도 그랬다.

당시의 규제 체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돈을 빌렸던 '기대 이익'을 침해할 수 없다는 논리다. 8·2 대책의 LTV·DTI 강화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으로 보면 합당한 논리지만, 다주택자들이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를 부채질해놓고 정작 규제는 신규 대출자가 떠안는 상황이 반복된 셈이다.

신 DTI에서 장래소득을 따질 때도 소득 감소가 예상되는 고연령층은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현재의 가계부채 증가 저연령층의 소득 증가 예상만 반영하겠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사회 정의나 국민 정서라는 측면에선 동의하지만,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소급 적용하면 혼란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률을 염두에 둬 대책의 강도를 조절했다는 지적에도 정부 관계자는 "오히려 가계부채 대책은 소비 감소를 막아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부동산 투기 억제는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며"성장률 목표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