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퇴직금 지급 등
노동개혁 과감하게 주도
저임금계층 640만 비정규직
눈물 닦아주고 한 풀어 주는
한국경제 도약 꾀하는 출발점
잠시 회고하면, 2006년 1월 18일 밤 10시,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하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한다"면서 한미 FTA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았다. 이어 한미 FTA협상을 위한 '4대 선결조건'(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 쿼터 절반 축소, 수입 자동차에 대한 배기가스 기준 적용 2년간 유예, 약값 적정화 방안 시행 연기)을 단행했었다. 사실 이러한 용단은 보수진영이 도저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조치들이었다.
이와 관련, 필자는 2007년 CEO 네트워크 포럼의 초청 강연회에서 특강을 마친 직후 청중 중 어느 교수의 질문을 받았다. "한미 FTA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필자는 즉각 "그것은 노 대통령의 칼을 빌려 통과시켜야 합니다" 이어 필자는 2009년 제10기 CEO 아카데미 경제포럼에서도 상기와 같은 신념으로 특강을 했다. 필자는 지금도 옳은 답변을 했다고 자부한다.
이제, 문 대통령은 노동개혁(임금체계 개편,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퇴직금 지급)을 과감히 주도해야 한다. 그것은 저임금계층인 64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국 경제의 도약을 꾀하는 출발점이다.
참고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노동개혁에 돌입했다. 그가 집권하기 전인 2015년 말부터 이미 발효된 엘콤리법에 따라 프랑스 기업들은 규모에 따라 일정 분기 동안 연속해서 매출이나 순익이 떨어지면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이에 더 나아가, 마크롱 정부는 노조의 권한을 축소하는 노동개혁안을 내놨다. 왜냐하면 경직된 노동규제와 정규직 과보호가 프랑스의 경제활력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독일은 2015년부터 '노동4.0'이라는 개혁 조치에 착수했다. 즉, '하르츠개혁'으로 경제를 일으킨 독일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추가 개혁에 들어간 것이다. 로봇사용 확대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응하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또한, 디지털 시장에 대한 근로자의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시스템 개혁에 나섰다. 지멘스 등 일부 기업은 이런 내용의 개혁 조치를 노사 합의로 이미 적용하고 있다.
모름지기, 고용의 유연안정성이 제고돼야 가계소득이 늘고, 저소득층의 몫이 증가하면서 소비 부진이 해결될 수 있다. 소위 '소득(임금) 주도 성장전략'에 의하여 가계소득이 증가하더라도 소비는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통계청의 가계소득통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2015년에 발표한 노동시장 유연성 지수에서 한국은 51점, 프랑스는 44점으로 모두 세계 평균인 61점을 훨씬 밑돌았다. 이와 반면에, 미국(99점), 덴마크(92점), 뉴질랜드(91점)은 최고 상위권을 차지했다.
물론, 노동개혁은 실로 어려운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단적인 증거로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 '4대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었는데, 실제로는 오직 재벌과 금융개혁만 강하게 밀어붙이고 노동개혁은 거의 손도 못 댔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다음과 같다. 고(故) 김영삼 대통령 임기 후반기인 1996년에도 '민노총'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노동법 개정안이 여당(당시) 단독으로 통과되자 즉각 총파업으로 강경투쟁에 나섰던 전력이 있다. 결국, YS정부가 민노총에 굴복함으로써 1997년 노동법 개정이 백지화 됐다. 바로 그해 1997년 말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노동개혁은 좌초된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발한 직후 정리해고 허용과 교원 및 공무원 단결권 보장을 교환하는 '노사정 타협'을 이루었으나, 그 이후에는 변변한 '노사정 대타협'을 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대량실업자와 1998년 1만4천명의 자살자를 야기했었던 IMF 외환위기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야 비로소 '노사정 대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는 나라인가? 촛불은 정치권력은 태울 수 있어도 640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한(恨)은 태울 수 없는가? 노산 이은상 선생은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고 읊었다.
/임양택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