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으로 제대로 싹 틔워야
이웃과 담 쌓은채 고민하지 말고
산행·종교활동·연애도 하면서
일상적인 만남 많이 갖고 살아야
따뜻함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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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받은 문자메시지다. 젊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많아서인지 평소 이런 문자를 자주 받게 된다. 대부분 이직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내린 결론들이다. 먹고살 대비책을 세워두지도 않고 일단 사표부터 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까?
하지만 다행히 일자리를 찾았다고 해도 이전보다 행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경제 성장이 침체기에 든 이래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고, 자연히 개인의 업무량은 늘었다. 눈앞의 일을 해치우느라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권고사직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 때문에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예 국가고시 등 다른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의전, 약전, 법전 준비생들이다. 전공을 바꿔 대학과정을 밟아 전문직을 갖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멀쩡히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평생직장을 갖겠다는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 내 눈에는 미래를 향한 멋진 도약으로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는 희망을 말하지만 눈빛이나 행동에는 괴로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괴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양질의 자리는 점점 희박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져가는 세상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가진 재주를 다 모아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될 리 없다. 무서운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가뜩이나 복잡한 마음을 더 짓누른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미래에 내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결정짓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기본적인 실력도 있어야 하고, 학벌이 뒷받침되면 더 좋은 거고, 인내심이나 도전의식 등 품성도 갖출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나는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연(因緣)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미래의 삶을 의논하러 나를 찾아온다. 그럴 때 나는 내 주변 사람 중에 그 친구의 꿈과 엇비슷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아니 꼭 꿈과 관련 없어도 위로를 주고 본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해 서로 어울리게 한다. 거창한 모임이 아니라 그저 산에 오르거나 자전거를 탈 때 놀러 오라고 한다.
안타까운 건 젊을수록 그런 자리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다. 학원에 가야하고, 스터디에도 가야하고, 시험 준비도 해야 한단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그 시간에 잠이라도 한 숨 더 자겠다는 마음도 보인다. 좋은 인연 날아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지만,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다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하던 대로 이 직장 저 직장 기웃대며 고민하는 걸 지켜볼 밖에는.
지나고 보니 내가 주선한 세대 간 통합 모임에 꾸준히 나왔던 친구들은 거의 자리를 잡아 열심히 잘 사는 반면, 저 하던 대로 고립돼 살던 친구들은 같은 고민에 허우적대고 있다.
먹고사는 일이 녹록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웃과 담을 쌓은 채 혼자 고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끔 산행 모임도 나가고, 종교 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일상적인 인연들을 계속 키우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까지 혼자 노력해 성공했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노력은 미래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그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우려면 좋은 토양과 햇볕이 필요하다. 인연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인연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모르고 오로지 자기 힘만 믿고 미래를 개척하려드는 건 어찌 보면 미련한 짓이다. 인연이라는 절반의 기회를 그냥 내다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도 좋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인연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아직 당신은 그 인연을 만나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