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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중국에 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보(國寶) 이상의 환대를 받아 흡족했고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 미·중 수뇌회담에서 그는 "미·중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더구나 2천535억 달러(약 283조원)라는 어마어마한 경제협력 선물 보따리를 풀자 트럼프의 입은 있는 대로 벌어졌다. 시진핑 주석 역시 쯔진청(紫禁城)에서 공개된 트럼프의 외손녀 아라벨라(Arabella·6)의 중국말과 중국 노래 동영상을 보자 깜짝 놀랐고 좀처럼 크게 웃을 줄 모르는 그가 그야말로 '얼굴이 깨지는' 파안대소를 해버렸다. 중국 여자 전통의상인 치파오(旗袍)를 입은 꼬맹이가 '시 예예(할아버지) 펑 나이나이(할머니) 닌 하오(안녕하세요)' 인사와 함께 한시(唐詩)를 암송하고 중국의 대표적인 민요 모리화(茉莉花:말리화)를 불렀기 때문이다. '하오 이뚜어 메이리더 모리화(한 송이 아름다운 모리화)'로 시작되는 노래의 발음도 정확하자 시 주석은 그 애 중국어 실력이 A+라는 찬사를 서슴지 않았다.

두 정상은 만족했고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중·미원수의 베이징회담 성과가 풍족하고 컸다(中美元首北京會晤成果 碩)'고 했다. '중·미관계의 새 장을 열었다(新篇章)'는 거다. 거기까진 그랬고 좋았다. 그런데 10일 베트남 다낭에서 개막된 25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 중국식 표현으로 '亞太經合組織' 회의의 미·중 수뇌는 확 달라졌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자유로이 열린 인도 태평양을 기초로 아시아에 관여하겠다'는 방침과 함께 공평과 평등을 원칙으로 한 (미·중) 양국간의 무역협정을 강조한 반면 시진핑은 다국간의 무역 체제를 지지하는 등 입장이 판이했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자유로이 열린 인도 태평양 구상'을 밝힌 반면 시진핑은 '이따이이루(一帶一路) 실크로드 경제구상'을 드러낸 거다.

남북 대치에다가 세계 패권을 다투는 양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게 한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APEC에서 만난 시진핑을 다음달 중국에서 또 보자고 했지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이 애석하다. 연방 고개를 좌우로 돌려대다가 목뼈에 금이라도 가는 거 아닐까.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