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평균보다 1.7개월 더 많고
독일보다 무려 넉달이나 더 일해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한다
이젠 우리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
쉼의 분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야
"사람은 본디 날짐승이나 길짐승과는 다른 존재다. 짐승들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이나 풀을 그대로 먹을거리로 삼지만, 사람은 이들과 달라 노동하는 자는 살아나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살아나갈 수 없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과 풀을 그대로 먹는 짐승들과는 달리 노동을 통해 자연을 넘어서는 존재다. 되돌려 말하자면, 그에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말하는 정의란 것도 다른 철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그려진다. 그는 남의 것을 훔친 자를 부도덕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보다 스스로 노동하지 않고 남의 노동을 훔친 행위, 곧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그는 그런 노동 착취행위가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나는 침략 전쟁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부당한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사회적 불의라고 규정했던 건 그에게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실제로 그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집단을 구성하여 침략자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대를 대혼란의 시대로 보았지만 혼란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당시의 혼란을 묵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백성에게는 세 가지 걱정이 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는 것,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는 것, 수고롭게 일한 자가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야말로 백성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이 말에서 그의 철학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 수고롭게 일한 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자뿐 아니라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일하는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천 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보아도 묵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돌아볼 만한 점이 없지 않다.
말할 것도 없이 현대의 한국인들은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높은 자살률과 낮은 국민 행복도를 보면 한국인의 삶은 대체로 우울해 보인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최근의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우울은 무슨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OECD에서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1.7개월을 더 일하며,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넉 달을 더 일한다. 이러니 한국 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노동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자질이 독일 노동자보다 넉 달을 더 일해야 할 정도로 떨어진다는 말인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많이 일하면 생산성도 따라서 올라간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증으로 이해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다.
2천 년 전의 묵자가 일한 자는 쉬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그의 시대적 요청에 명징하게 답한 것처럼 이제 한국 사회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 쉼의 분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고롭게 일한 모든 이들이 마음 놓고 넉넉히 쉴 수 있는 날이 이제는 와야 하지 않을까. 2천 몇 백 년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