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란 그다지 드높은 스토리→hi(high)story는 못된다고 한다. 우여곡절 저급 스토리라는 거다. 그런데 박정희의 한국 현대사는 예외라는 게 역사가들 평가다. 한국과 전혀 이해(利害)나 친분 관계가 없는 현대사 위인 석학들의 객관적 시각이 그렇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Toffler)→민주화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하다. 그 나라 수준에 맞게 다소 제한된 자유를 독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Drucker)→2차대전 후 인류가 이룩한 성과 중 가장 놀라운 기적이 박정희의 경제 발전이다. ▲덩샤오핑(鄧小平)→아시아 네 마리 용의 경제 발전을 따라붙어야 한다. 특히 박정희를 주목하라. ▲리콴유(李光耀)→아시아에서 자기 나라의 위기를 구한 지도자는 박정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덩샤오핑이 꼽힌다. ▲푸틴→박정희의 성공에 세계가 놀랐다. 그에 관한 자료를 모두 수집하라. ▲키신저→박정희 판단은 늘 옳았다.
역사가들은 성공한 근대 3대 혁명가를 서슴없이 꼽는다. 1922년 터키의 케말 파샤(kemal Pasha), 1952년의 이집트 나세르(Nasser), 그리고 1961년의 한국 박정희다. 어느 누가 사가(史家)들의 객관적 평가에 토를 달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베트남 다낭의 APEC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13일 필리핀 마닐라의 ASEAN 정상회의에 참가하면서 대뇌에 무슨 상념이 스쳐갔을까. 일본 중국과 함께 아시아 대표국가로 우뚝 선 한국의 위상에 뿌듯함을 절감하지 않았을까. 그런 한국이 누구 덕이라고 여기는가. 설마 앞서 예거한 현대사 위인과 역사가들의 박정희 평가를 부정하지는 못할 줄 믿는다. 인물 평가에 100% 긍정 또는 부정은 있을 수 없다. 정적(政敵) 계보나 직·간접 피해,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생 100주년의 박정희 동상을 서울광장이나 세종로에 세우자는 것도 아니고 그의 기념관에 세우는 것조차 막는 건 지나친 처사가 아닌지 문재인 정권에 묻고 싶다. 11만여㎢의 좁은 땅 북한엔 무려 3만8천여 김일성 김정일 부자 동상이 서 있다. 공적이라고는 헬 조선(북한) 창조밖에 없건만.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인간다운 도리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