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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 시절에는 전기와 후기로 나눠 시험을 치렀는데, 수험생이 대학교에 직접 가서 시험을 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1992학년도 후기 대입학력고사를 하루 앞둔 1992년 1월 21일. 서울신학대에서 보관 중이던 학력고사 문제지 포장 박스 겉면이 뜯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문제지는 각 교시별로 한 부씩 없어진 것이 확인됐고,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교육부는 부랴부랴 전국 각 대학에서 보관 중인 문제지를 긴급 회수해 파기했고, 1월 22일로 예정돼 있던 후기 대입 학력고사를 2월 10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예비소집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있던 수험생들은 헛걸음 치고 되돌아가야 했고, 학력고사 실시와 함께 연금 상태에서 풀려날 예정이었던 출제위원들은 20일 동안 더 붙잡혀서 새로운 시험문제를 출제해야만 했다. 또 많은 수험생 들은 그해 설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수험 공부에 매달려야 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당시 교육부 장관은 경질됐다.

경찰 수사 결과 범인은 당시 야간 당직을 맡고 있던 경비원으로 밝혀졌다. 해당 경비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집사의 딸이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으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시험지를 해당 수험생에게 전달하지 않고 바로 불태워 버렸다고 진술했다. 1992년 7월 재판부는 문제의 경비원에게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그를 석방했다. 당초 검찰은 그에게 특수절도혐의를 적용하려 했으나 피고인이 진술을 번복 하는 데다 뚜렷한 물증 확보에도 실패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그가 건설회사에 재직할 당시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를 적용해 그를 구속·기소하고 1년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결국 피고인은 구속된 지 168일 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됐고,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 때문에 16일로 예정돼 있던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11월 23일로 연기됐다. 재난은 안타깝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수험생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기 바란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