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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 일하다 '흡연부스' 사업 도전
공기중 유해물질 없애, 판매는 재미 못봐

습진앓던 지인에 공기청정기 시제품 건네
번개치는 순간 큰 에너지, 공기정화 응용
눈에 띄게 상태 호전… 주변서 만족 후기
연구소·대학 통해 각종 효과 검증받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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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의 원리를 적용한 신개념 공기청정기가 나왔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내년 상반기 중 본격 출시될 이 공기청정기는 '알레르겐제로'의 박종필(55) 대표가 손수 개발한 제품이다.

"아토피를 비롯해 알레르기, 습진, 비염, 천식… 이런 현대판 난치병을 유발하는 미세먼지 등의 유해 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핵심 기술이 바로 천둥·번개의 원리입니다."

평생 엔지니어로 살아온 그가 최근 작업실로 쓰고 있는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작은 공장을 찾았다. "좀 어수선하다"며 머쓱해 하던 박 대표가 안내한 내부는 마치 어릴 적 학교 과학실을 연상케 했다.

"천둥·번개로 어떻게 공기를 정화하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자에게 박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번개가 '번쩍'하고 빛을 낸 뒤에 얼마 지나서 '우르르 쾅쾅'하며 요란한 천둥소리가 납니다. 그런 천둥·번개가 친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날씨가 맑았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그는 "쉽게 설명하자면 천둥·번개가 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간의 엄청난 에너지가 공기 중의 나쁜 유해 바이러스를 없애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라고 했다.

스타트업을 가다
'알레르겐제로' 박종필 대표가 작업실로 쓰고 있는 남동구 공장에서 천둥·번개의 원리를 적용한 신개념 공기청정기를 소개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 공기청정기는 ▲팬(Fan)으로 오염된 공기를 빨아들여 ▲천둥과 번개의 원리를 적용한 CM-P170이란 장비와 레이저로 유해 바이러스를 분해하고 ▲광촉매(빛을 받아들여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물질) 필터와 UV램프(자외선을 발생하는 램프)를 활용한 화학반응 원리로 또 한 번 유해 바이러스를 분해한다.

박 대표는 "이때 초미세먼지, 담배 연기, 니코틴, 타르 등의 유해 성분을 95% 이상 분해한다"고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활성탄 등 여러 개의 필터를 이용해 그 밖의 유해 바이러스나 냄새 등을 잡아준 다음에야 이온셀 모듈(CM-P190)이란 장비로 맑고 상쾌한 공기를 내뿜는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나오는 공기는 유해 물질을 99% 잡아낸다"고 자신했다.

회사명 '알레르겐제로'는 알레르겐(ALLERGEN)과 제로(ZERO)의 합성어다. 알레르겐이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외부 물질을 의미한다. 새집증후군 유발 물질, 먼지, 진드기, 애완용 동물 털, 꽃가루, 곰팡이 등을 꼽을 수 있다.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만한 요인들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산업 장비나 제품 등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로 일하던 박 대표는 정부 정책에 발맞춰 지난 2009년부터 흡연 부스 설치사업에 뛰어든다. 당시 시중에 나온 초창기 흡연 부스는 박스 안에 팬을 달아 담배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기초적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2013년 담배 유해물질을 잡아내는 흡연 부스를 개발했으나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하지만 당시 쌓은 기술이 결국은 지금의 공기청정기 제품을 개발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공기청정기로 사업 방향을 튼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박 대표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 건물 지하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데 심각한 습진 환자"라며 "아무래도 곰팡이가 문제인것 같아서 그 지인에게 틈틈이 만들었던 시제품을 한번 써보라고 줬더니, 몇 개월 후에 내가 놀랄 정도로 눈에 띄게 호전돼 있었다"고 했다.

이후 아토피를 앓고 있는 또 다른 지인도 이 제품을 써보고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이 공기청정기는 앞으로 국내외 연구소와 대학 등을 통해 각종 효과를 검증받을 예정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H1N1), 코로나바이러스, 곰팡이·황색포도상구균·대장균, 새집증후군·포름알데히드·암모니아 등이 거의 완벽하게 제거되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박 대표는 "공기청정기가 아토피 등의 환자들에게 어떠한 효과를 가져다주는지 등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을 가다

제품 개발이 막바지에 오면서 그동안 다소 서먹서먹했던 가족들과도 대화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정말 희망적이에요. 이 공기청정기를 개발하느라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늘 마음이 무거웠어요. 수입도 변변치 않아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자녀들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죠. 최근 들어 언론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는 등 주변에서 제품에 관해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볼멘소리하던 가족들도 놀라워하는 눈치예요." (웃음)

박 대표는 '착한 기업'을 꿈꾸고 있다.

"아토피 등이 참 무서운 병이에요. 병을 앓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런 병 때문에 어린 친구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잖아요. 이 공기청정기가 아토피 등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장차 사회적기업이 돼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