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진짜 시험 보는 날
작은 여진없이 잘 마치길 기원
모든 실력 발휘한 날로 기억되길
인생·미래 결정하는 날 아니니
실망 않길 바라며 '모두 파이팅!'
수능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수능을 보는 이들을 위하여 이해해주고, 감수하는 점이 많다. 그만큼 우리 국민 전부가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뜻일 것이고, 학력고사 세대든 수능 세대든 시험을 앞둔 그 절박한 심정을 스스로 겪어보았거나, 자식들을 통해 겪어보았기 때문이리라. 영어듣기평가를 위하여 항공기 이착륙 일정을 조정하고, 출근을 늦추고, 금융시장 개장시간도 늦추는 등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벌어져도 큰 불만 없이 당연히 양해하고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수능 날에 지각하다 겨우 입실하는 수험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로 감정이입이 된다. 작년에 도시락에 깜박 잊고 놔둔 엄마 핸드폰 때문에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시험도 보지 못한 어느 고3 학생의 사연을 듣고 모두가 자기 일처럼 안타깝고 속상해하지 않았던가.
지진이 난 직후 긴급회의를 하고, 현장에 나가보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인 정부는 "효율"보다는 학생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나 시험 12시간 전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다보니 수험표나 고사장은 그대로 유지되는지, 원래 합격자 발표를 하기로 예정된 학교는 예정대로 발표하는 지 등 이런 저런 혼란이 많았다. 다행히 하루 만에 대학교별 논술, 면접 일정도 거의 일주일 순연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여행취소 수수료 등을 수험생 가족이 전부 부담해야할 상황이었지만 이를 면제해주기로 한 여행사의 훈훈한 미담이 전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사장을 재빨리 점검 진단하고 포항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최대한 안전한 장소에서 시험 볼 수 있도록 조치한 것도 다행이다.
세기말에 태어난 99년생이라서 그럴까. 학창시절에 신종플루, 세월호, 메르스, 대통령 탄핵 등 나라의 굵직한 사건들이 유독 많아서 제대로 된 수학여행도 가보지 못했고, 어른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울분을 터트리기도 하고, 몇 십 년 만에 한번 온다는 금년 추석 연휴 같은 긴 휴가를 누리지도 못했다.
그런 사연이 있기에 저마다 최선을 다해 컨디션을 조절하며 실력을 발휘할 그날을 생각하며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던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능 연기로 인해 허탈감과 실망이 컸을 것이다. 처음에는 인터넷 포털 댓글에 포항 학생들 때문에 링겔까지 맞아가며 컨디션 조절을 한 것이 허사가 됐다며 그들을 원망하고 짜증을 내는 투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후 지진 피해 동영상을 보거나 여진 소식을 듣고서는 수능을 미룬 것은 잘한 결정이라는 사연이 더 많았다. 더 나아가 지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서로가 힘들어도 우리보다 포항 애들이 몇 배는 더 힘들 것 같다며 걱정해주거나 조금만 참고 다 같이 시험 잘 보자는 취지의 글들이 올라왔다.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또래를 경쟁상대로만 생각하지 않고 같이 공감하고 동행하고자 하는 밝은 미래를 보았다.
이제 내일이면 진짜 수능이다. 적어도 내일 만큼은 작은 규모의 여진이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래서 포항 수험생들이 온전히 시험을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포항 수험생뿐 아니라 지난 3년간 게임의 유혹, 잠과의 싸움에서 크고 작은 패배와 승리를 경험해왔던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내일 하루는 자신의 전 실력을 쏟아 부은 날로 기억되길 바란다.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그리고는 시험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길 바란다. 수능은 통과의례 일뿐 인생이나 미래를 확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 그 누구도 이에 실망하거나 우쭐대지 않기를 바란다. 수험생 모두 파이팅.
/장미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