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 용어 중에 '샤워실의 바보 (a fool in the shower room)'라는 것이 있다. 전 시카고대학 교수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이 제시한 개념인데, 경기과열 또는 경기침체기에 정부의 섣부른 개입이 경기를 뒤흔들 수 있다는 말이다.
샤워실에서 갑자기 물을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샤워실에 들어간 바보는 수온 조절 밸브를 더운 물 쪽으로 확 돌려버렸다가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놀라 밸브를 찬 물 쪽으로 돌리게 되고, 찬물이 나오면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결국 고생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샤워실의 바보는 섣부르게 개입하는 정부를, 밸브는 경제정책을, 물의 온도는 경기의 등락을 의미한다.
이는 비단 경제학에서만 인용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언론계야말로 샤워실의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남한으로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군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JSA 경비대대 대대장의 무용담이 화제가 됐다. 처음에는 해당 대대장이 "차마 아이들을 보낼 수 없었다"며 본인이 총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군을 직접 구출했으며, 마치 그를 영웅처럼 묘사하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JSA에 설치된 CCTV를 본 사람들이 북한군을 실제 구조한 것은 부사관 2명이며, 대대장은 현장에 없었고 공명심에서 자기 업적을 부풀린 것 아니냐는 보도가 나와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렇게 논란이 일자 22일 유엔사는 북한군 귀순현장이 생생하게 담긴 CCTV와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을 공개했다. 확인결과 긴박한 상황 속에서 부사관 2명은 낮은 포복으로 귀순병사를 안전지대로 옮겼고, 대대장은 부사관들 바로 뒤에서 이들을 엄호하며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대대장이 완벽하게 구조를 지휘했다며 모든 언론이 칭찬 일색으로 돌변했다. 이렇게 같은 사안을 두고 왔다 갔다 하는 신문·방송사들의 태도에 많은 시민들은 언론계야 말로 진짜 문제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결국 샤워실의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기자들이 더 노력해서 오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