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교육부 해체 목소리도
더 무너질 곳 없을 정도로 망가진
한국의 교육과 학문
관료들 이해 절대적 부족 속에
교육공학적 차원 통제·억압 남발
교육이 한 국가는 물론, 그 공동체와 개인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특히 해방 이후의 역사에서 보듯이 우리가 거둔 성취는 근대적 교육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자명하지 않은가. 더욱이 지금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고, 근대의 종언과 함께 시대사적인 전환이 다가왔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이때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해방 이후의 우리 교육은 전적으로 산업화 패러다임에 맞추어져 있었으며, 그 방향이 일정부분 성공을 거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후기 산업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으며, 문명사적 전환이 눈 앞에 다가온 지금 산업화시대의 틀에 맞춰진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은 절실한 과제가 아닌가. 굳이 이런 거대담론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교육이 당면한 문제는 수없이 비판되고 또 그에 대한 대안도 무수히 제기되었다.
공교육 파괴, 입시과열과 사교육 범람, 서열화된 대학, 대학교육의 붕괴, 인문학과 공학 교육의 위기 등 거론하기조차 힘든 수많은 한계와 모순, 역기능들이 교육 개혁을 절박한 시대적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교육개혁의 시대적 책임을 안고 그 자리에 오른 이들은 이 과제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 지난 겨울 촛불 시위가 촉발된 데는 이화여대의 입시부정 문제와 교육과정의 역기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그때 학생들이 요구한 것이 다만 한 대학에 국한된 문제였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 국가의 교육이 무너지면 학문도 부서지고, 그에 따라 국가의 미래도 함께 침몰할 수밖에 없음을 세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대학은 보이지 않게 더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취업기관이 된 대학, 수많은 반교육적이며 반민주적 행태가 넘치는 대학과 장식이 된 연구는 한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교육과 학문을 포기할 지경으로 몰아간다. 대학 정책을 둘러싼 거짓은 지난 정권의 잘못이라 쳐도, 83%에 이르는 사학은 지금 온갖 형태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재정과 정책적 통제를 통한 교육부의 온갖 반교육적 행태에 굴종하는 것이 지금의 대학이다. 지난 11월 13일자 '교수신문'은 재정 위기에 직면한 대학이 비정규직 전임으로 교수를 대체하거나 아예 학문 후속세대를 채용하지 않음으로써 곧 베이비부머 세대의 교수가 은퇴함에 따라 학문 자체가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교육 개혁을 책임질 사람들은 지금 촛불의 혜택을 누릴 뿐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 책임있는 행동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들은 왜 그 자리에 있는가, 아니 어떻게 그 자리에 앉게 되었을까? 정말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육부를 해체해야한다는 여론이 지난 대선에서 공약에 까지 이를 정도였을까. 그런데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한국의 교육과 학문은 더 무너질 곳이 없을 정도로 부서지고 있다. 교육과 학문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관료들이 다만 교육공학적 차원에서만 통제와 억압을 남발한다. 그렇게 시나브로 죽어가는 교육과 학문을 위해 개혁하라고 외쳐도 듣지 않는다. 교육과 학문이 죽으면 삶과 미래도 함께 죽는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