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건축면적 확보 위해
높게 짓는 건 당연한 경제 법칙
고부가가치로 투자자도 몰려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한
결정권 행사 관행 없어져야
사실 건물의 높이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 배경이나 내용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이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응징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의 노여움이었다면, 인간의 경제력과 기술의 상징으로 탄생한 마천루는 현대도시의 발전과 매력을 경쟁적으로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인류역사에 있어 건물의 규모나 높이는 그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과 경제적 힘의 크기에 따라 비례해왔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피라미드나 왕궁, 중세교회의 첨탑과 돔, 성곽도시의 종탑과 망루, 산업혁명시대의 공장의 굴뚝 등이 바로 상징적, 실용적 목적에 의한 인간의 높이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철강 산업의 발달과 건축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건축물의 높이는 더 이상 인간의 의지를 시험해보는 대상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파리 만국박람회에 등장했던 에펠탑을 두고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난 것이 불과 130년 전인 1889년이었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카고와 뉴욕을 중심으로 초고층건물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소위 마천루의 도시라는 이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를 즈음하여 대도시의 관광상품으로 등장한 그림엽서에 초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즐겨 사용되었고, 지구촌의 유수한 도시들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가지겠다는 야심찬 경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교회의 첨탑을 제외한 모든 건물의 높이를 24.5m 또는 길의 폭만큼 규제하는 런던법이 1888년에 만들어졌고, 건물을 경쟁적으로 높이 짓는 것이 도시의 무질서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파리의 도시계획가 오스만은 파리를 재개발하면서 건물의 높이를 5~6층으로 획일화시켰으며, 1909년의 시카고 계획에서도 건물의 높이를 통일시켜 도시경관을 가지런히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10년 만들어진 법률 때문에 워싱턴 시에서는 아직도 40m의 높이규정으로 미국의 유일한 수평도시가 되어버렸다. 1916년 뉴욕시는 최초로 건축선후퇴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따르면 길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전망에 대한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면서 고층건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우리나라의 건축법에서도 일조권과 관련된 건축선 후퇴규정과 마주보는 건물의 이격거리에 따라 건물의 높이를 규제하고 있으며, 용도지구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서도 높이규제가 달라지기도 하며, 건축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건물의 높이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건물 높이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면서도 엄격하지만 이 또한 경직되게 운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파리나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물론 대부분의 유럽 중소도시들도 나름대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도시경관에 대한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건물의 일정 높이를 유지하고 있지만, 단조로운 도시경관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비판도 수용하면서 예외적인 고층건물을 허용하는 유연성도 가지고 있다. 도시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마다 초고층건물의 허용에 대한 찬반 논란도 많이 있지만, 도시경관법을 도입하여 도시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시형태나 도시경관의 질은 건물의 높이를 규제하는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땅값이 높고 개발의 요구가 많은 곳에서는 개발밀도가 높아지게 마련이고, 정해진 토지에서 많은 건축면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물을 높이 짓는 것이 당연한 경제의 법칙이다.
현대의 도시는 경제논리에 의해 도시발전이 가늠되는 곳이기도 하다. 개발밀도가 높은 곳이 땅값이 비싸고 임대료도 높다. 이 말은 단위면적당 생산되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지금도 대규모 개발의 경우 건물의 높이는 물론 개발에 따른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나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전근대적인 행정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도 지난 80년대에 만들어진 수도권 신도시들의 아파트가 재건축되는 날에 대비하여 서울의 예를 본보기삼아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