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901002001900095791

중학교 때 TV로 홍수환(67) 선수의 4전 5기 장면을 지켜봤다. 상대는 파나마의 카라스키야(56) 선수. 아버지는 홍수환이 다운될 때마다 '끝났네' 라며 혀를 찼다. 3회 기적 같은 역전 KO승을 거두자 혈압이 치솟아 큰 일이 날 뻔했다.

정확히 40년만에 두 선수가 재회했다. 지난 27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4전 5기 홍수환 40주년 기념행사장'에서다.

홍수환은 "카라스키야를 먼저 칭찬해야 할 것 같다. 만약 제가 졌다면, 파나마까지 40주년 기념행사에 안 갈 것 같다. 카라스키야는 졌으면서도 한국까지 온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이어 "카라스키야 덕분에 먹고 산다. 40년 전 일방적으로 이겼으면 (국민은) 저를 잊었을 것"이라고 해 폭소가 터졌다.

행사장에는 장재식(82)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홍수환은 "당시 국세청 차장이셨던 장관님이 김포공항에 배웅 나와 '꼭 옆구리 공격을 잊지 말라'고 가르쳐주셨다. 그 옆구리 공격으로 세계 챔피언이 됐다. 오늘 장관님과 카라스키야의 포옹이 제 인생 가장 흐뭇한 순간"이라고 떠올렸다.

장 전 장관은 어떤 사람이길래 홍수환을 후원했을까.

그는 공부는 물론 어지간한 운동은 다 잘하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대학 4학년 때 처음 도전한 고등고시 행정과에 수석 합격해 장관에 3선 의원을 지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권투를 배웠고, 제기차기 400회, 태권도 6단, 바둑 7단, 장기 3단, 당구 250, 골프 핸디캡 5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후손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아들이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조카다.

그가 홍수환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국세청 차장 때다. 홍 선수가 카라스키야와의 경기에서 4전 5기 끝에 KO승을 거두었다. TV로 권투경기를 보고 그를 찾아가 인연을 맺었다. 몇년간 후원한 적이 있다. 요즘도 가끔 만난다."

홍수환을 만난 건 4전 5기 이후라는 얘기다. 그럼 공항에 나와 옆구리 공격을 말한 건 누구인가.

/홍정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