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이란 역사적 존재 통해
우리가 아는 한국사 새롭게 구성
우리는 근대·공산주의 삶 싫고
인간이 존중되는 세계 바란다
'밥'만 원치 않는건 사람이기에

박헌영은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태생. 필자는 면을 하나 격하여 있는 덕산면에서 출생했다. 가깝다면 아주 가까운 사이. 그보다 필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역사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했던 시대였다. 그에 대해서 아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20년대부터 일생을 공산주의로 일관한 사람이요, 해방공간의 이름 '높은' 남로당 당수다.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6·25 전쟁이 계속되던 1953년 3월 11일 제국주의의 간첩이라는 혐의로 북한당국에 체포, 1955년 12월 15일 사형을 언도받고 1956년 7월 19일 한밤에 권총으로 밀살되고 말았다.
최근 필자의 관심사는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끝날 때까지의 8년사를 새롭게 보는 것.
1979년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있었고 2006년에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다시 흘렀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일제말기부터 해방공간까지의 역사적 상황을 민족사의 시각에서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다. 해방과 더불어 분단이 시작되고 남쪽에서 미군정이 시작되고 단독 정부들이 수립되고 6·25 전쟁이 예비되는 과정들을 대한민국 체제의 관점에서 보는 대신, 어찌하여 한국인들이 미완의 근대를 살게 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살피고자 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그러한 해방 전후의 한국사를 다시 한 번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그 배경이 있다.
1990년 전후로 한 이른바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담론이나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정치경제학적 상부구조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때마침 한국에는 야만적인 3당합당으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다. 이 작은 나라의 어느 한 지역을 고립시키고 그곳을 진보로 몰아붙여 보수끼리 대통합을 하자는 논리였다. 이를 주창한 정치도, 동조한 정치도 민주주의일리 없다. 나중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나왔으나 김영삼 정부 말기에 직면한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은 깊이 성찰할 여유가 없었다.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곧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깊숙히 편입되는 길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 정부들의 무지나 실책이나 위선 같은 것까지 변명해줄 생각은 없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이러한 시대가 15년을 경과한 끝에 나왔다. 식민지 체제가 근대화를 가능케 했다면 그와 같은 아이러니를 승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 이 책의 대전제였다. 그로부터 이승만 독재도, 일본의 위안부 문제 책임도, 박정희 5·16 쿠데타와 유신 체제 선포도 '자동적'으로 승인될 수 있었다.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이제 우리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동시에 뛰어넘어 새로운 눈으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할 역사의 '계단'에 다다라 있다. 두 책을 떠받치고 있는 두 상이한 담론의 지위는 물론 같지 않다. 그래도 어쨌거나 새로운 입각점에 서지 않는 한 8·15 해방에서 6·25 전쟁으로 이어진 민족사의 비극을 극복할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간된 지 벌써 8년이나 된 안재성 작가의 새로운 "박헌영 평전"은 하나의 경이다. 옛날에 왕년의 "해방일보" 기자 박갑동이 쓴 "박헌영 평전"을 읽었던 필자였다. 그에 대해서는 웬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역시 지식의 세계에 '안다'는 것은 없다. 안재성 작가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증언들,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 자료들,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구소련 문서들과 미국 쪽 자료들을 망라하면서 박헌영이라는 한 역사적 존재를 통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한국사를 새롭게 구성해 보였다.
그가 무엇을 썼느냐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박헌영의 일생을 단순하게 영웅화시키지 않고도, 또 좌익 공산주의를 예찬하거나 승인하지 않고도, 우리 역사를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일깨울 수 있었다.
우리는 '근대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되는 세계를 원한다. 우리는 '밥'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사람인 이유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