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내용 기반으로 학생 스스로 결정·교사 개입 최소화
"직접 찾아가보니 새로운 느낌"… 학부모 만족도도 높아
인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합일초등학교의 '자율 수학 여행'이 학생·학부모의 호응을 얻고 지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행복배움학교인 합일초 수학 여행은 아이들이 학교 교실에서 배운 교과 내용을 토대로 일정을 짜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다른 학교처럼 교사와 여행사가 짠 일정대로 이동하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배낭 여행과 비슷하다. 11월에 예정된 수학 여행에 앞서 학생들은 8월 말부터 편성된 조원들과 함께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 여행 일정을 세운다. 8개 조에 1명씩 배치된 교사들은 아이들 '안전 관리'에 충실하고, 그 과정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다.
합일초 5·6학년 학생 53명(1명 불참)이 지난 달 6~8일(2박3일간) 다녀온 수학 여행을 아이들이 쓴 보고서와 감상문을 토대로 재구성해봤다.
합일초 5학년 이령금 양은 올해 2학기 시작과 함께 학교 도서관에서 '서울 여행'을 소재로 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책을 보면서 수업 시간에 보고 배운, 평소 가 보고 싶은 장소를 리스트로 만들었다.
이령금 양은 양재 시민의 숲 공원이 궁금해 자료 조사에 나섰다. 이희강(5학년) 군은 서울타워 케이블카의 탑승 위치와 운행 시간을 체크했다. 양호열(5학년) 군은 서울 5대 궁궐을 직접 보고 싶었고, 이중 덕수궁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지난 해 자율 수학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6학년은 교통편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첫날 일정으로 '남산~경복궁~양재~서울타워' 경로를 결정했다. 담당 교사는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울 지도와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 이동 시간과 교통편을 논의했다.
"첫날 일정이 빡빡해 보인다"는 교사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양재 시민의 숲을 둘째 날 일정으로 바꿨다. 합일초 아이들은 8개 조로 나뉘어 이런 방식으로 수학 여행 일정을 수립했다.
오랜 시간 준비해도 낯선 도시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길을 찾아가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고층 빌딩 숲 사이, 미로 같은 지하철 지하상가 속에서 길을 잃기 일쑤였다. 이럴 때마다 6학년 선배들이 길잡이에 나섰다. 복잡한 거리에서 길을 잃었을 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켜 길 안내에 나섰다.
합일초는 올해 아이들에게 '특별 미션'을 부여했다. 거리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말을 걸고 '인증샷'을 남기는 과제였다.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일은 낯설었지만 즐거운 경험이 됐다. 미션을 수행하지 못한 아이들은 성공한 친구의 노하우를 듣고 재도전에 나섰다. 이렇게 수학 여행에 나선 53명 모두가 미션 해결에 성공했다.
수학 여행을 끝낸 다음날인 11월 9일 5·6학년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사후 발표회'를 열었다. 내 경험을 알리고, 다른 친구들의 체험담을 경청하는 것도 교육 과정의 하나였다.
허민준(5학년) 군은 "6학년 형, 누나들과 선생님이 힘드셨을 것 같다"며 "내년에는 우리가 이끌어야 하니까 더 잘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서은(5학년) 양은 "글과 사진으로 미리 조사한 곳을 우리가 직접 찾아가니 더 새로운 느낌이었다"며 "종묘를 못가서 아쉬운데 내년에는 꼭 가보고 싶다"는 소감을 말했다.
합일초의 한 교사는 "2015년 전체 교사 회의를 통해 자율 수학 여행이 결정됐다"라며 "학부모 만족도 조사 결과도 좋은 편이어서 이 프로그램을 보완해가며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