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노력하는 사람과
싫은걸 억지로 하는자 결과 뻔해
즐겁지 않게 하다 망하느니
처음부터 안하고 노는게 더 행복
자율의지 그 뭔가를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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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가 요령껏 규율을 피하며 살았다 해도 신학교 생활이 갑갑한 건 사실이었다. 신학교에서 생활하는 내내 속으로 외쳤다. '신부가 되기만 해봐라. 한 일주일 동안 잠만 잘 테다!'
실제로 나는 신부가 되고 정말 사제관에 처박혀 잠만 잤다. 그것도 일주일이 아닌 한 달씩이나. 9년을 타율 속에 살다가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니 정말 너무 달콤했다. 하루 한 번 있는 미사만 마치면 나머지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사제관 안에서 두문불출하는 나를 두고 신자들은 신심 깊은 신부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기도를 하나 보다 했을 거다. 그러기를 거의 한 달. 그런데 참 신기했다. 미사 집전만 겨우 하고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다 보니 슬슬 기도가 하고 싶어지는 거였다.
9년을 기도만 하며 살 때, 한 자리에 앉아 장시간 침묵 속에 기도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사실 영혼의 울림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마음에, 즉 자율로 택한 기도는 게으름을 피우며 청한 낮잠보다 훨씬 달콤했다. 신을 만나는 기도 본래의 목적을 자율 속에 맛보게 된 것이다.
나를 9년이나 묶어놓은 우리 조직(?)에 대한 복수로 무려 한 달이나 테러를 저질렀지만, 그러면서 깨달았다. 똑같은 규칙이어도 타율이 아닌 자율은 내 삶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 자유를 준다는 사실을. 똑같은 기도라도 하고 싶을 때 하면 무척 달콤하지만, '신부니까 해야 한다'는 타율에 따른 기도는 스트레스가 될 뿐이라는 걸 체험했다. 내게 압박을 주는 건 아무리 명예롭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직업이나 진로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깜냥을 벗어난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무시해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내 직분 안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이 빡빡한 사제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거운 일,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내 것이 아니니 좀 포기하고 놀아도 된다. 즐겁게 살기만도 바쁜 인생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묻는다.
"나 좋은 것만 하다가 남보다 뒤처지면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놀기만 하는 건 죄 아닌가요?"
걱정도 팔자다. 저 좋은 일 찾아 신나게 노력하는 사람과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억지로 해서 잘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남의 시선이나 사회가 정한 룰에 따라 즐겁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다가 망하느니, 처음부터 안 하고 노는 편이 훨씬 행복한 거다. 내 안의 자율 의지가 요동치는 그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 말이다.
/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