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오랜만에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갑작스런 전화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라는 걱정스런 마음에 되물었을 때 자연스럽게 되돌아온 대답의 '그냥'의 뒷 말에는 '보고싶어서', '생각나서', '잘 지내나 궁금해서' 뭐 이런 말들이 숨겨져 있으리라.
똑같은 답이라고 할지라도 관계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가을이 온 지도 모르게 벌써 겨울이다. 겨울의 시작이라기에는 신고식이 너무 가혹할 정도다.
보통 연말이면 가장 많이 진행되는 행사는 결산 행사다. 산업 각 분야 또는 영화, 음악 등 문화계 등 한 해를 결산하고 잘한 사람들을 찾아 표창으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고생한 노력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그러나 사실 가장 많이 진행되는 행사는 각종 기관 및 기업체들의 나눔 행사다.
추위에 난방은 물론 밥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소년·소녀가장 등 취약계층이 조금은 덜 춥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추진된다. 김장나눔 행사가 대표적이며, 이 밖에도 연탄 전달 및 각종 성금 및 위문품을 전달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지원 대상은 보통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은 시설 및 지자체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차상위 계층 등이다.
보통 기관들은 이러한 행사 후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나눔 활동에 대한 성과를 자랑한다. 이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해마다 반복된다. 때문에 꼭 해야하는 연례행사처럼 애초 취지와 달리 딱딱하고 성의가 없어 보이거나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가 수년 전 미담을 취재했던 한 당사자의 인터뷰 일화가 생각난다. 이러한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냥'이었다. 수차례 이유를 되물었지만 대답은 '그냥'이었다.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눠보니 '그냥'이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생활이 봉사였고, 그냥 몸에 배인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성의없어 보이는 '그냥'이라는 답변이 진실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인가?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그냥'이라는 답이 따듯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당신은?
/최규원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