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속에서 할머니 구한 세 청년
그들은 맹자의 가르침 처럼
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 않고
아무 생각없이 갑작스런 마음에서
인간 본성 선함을 이끌어냈던 것
그 용기 존경·감사의 마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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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난 한 주 동안은 유난히 화재 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며칠 전 TV로 뉴스를 보다가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 소식을 접했다. 뉴스에 따르면 70대 노부부와 손자가 사는 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는 곧바로 밖으로 대피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손자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자 마침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던 청년 셋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머니를 구해 나왔다는 것이다.

방송사의 카메라 앞에 선 청년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뉴스를 보고 있던 나에게는 청년이 인터뷰에서 한 말 중 '생각할 겨를도 없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맹자가 말한 '출척측은지심( 척慽惻隱之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맹자는 어린 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유자입정(孺子入井)'의 사례를 가정하면서 그런 일을 목도하게 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척측은지심( 척惻隱之心)'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여기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그가 주장하는 성선설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는 측은지심을 필두로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두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네 가지 마음이라는 뜻에서 사단(四端)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어서 사람이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누구나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만약 이 네 가지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맹자에 따르면 이런 마음은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깊이 생각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나오는 양지(良知)요 양심이기 때문이다.

맹자가 사단(四端)의 으뜸으로 강조한 측은지심은 흔히 연민이나 동정심 정도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측은(惻隱)의 '측(惻)'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고 '은(隱)'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측은지심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헤아리는 마음이라 하겠다.

그런데 맹자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데는 '출척( 척)'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말한다. '출척( 척)'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당해 '깜짝 놀라는 마음'이다. 맹자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은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웃 사람의 칭찬을 바라서도 아니며,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아이의 부모나 이웃의 칭찬이나 비난을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갑자기 일어나는 마음이 '출척( 척)'이라 본 것이다.

맹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런 생각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확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만약 위급한 상황에 처한 어떤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곧바로 행동하지 않고 이것저것 길게 생각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위험을 두려워 해 소방관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을 염려하여 구조를 주저할 수도 있을 것이며, 행동의 결과에 따른 이로움이나 불리함을 따져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불길 속에서 할머니를 구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휘한 청년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면으로나마 먹던 밥알을 토해내고 이웃의 귀중한 생명을 구해낸 세 명의 청년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