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 기획 관련1
18일 오후 인천시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직 근로자가 재활용 박스를 정리하고 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택배보관·재활용품 정리등
업무외 명령금지 조항불구
현장서 '임의 해석' 여지 커

최저임금 인상 정부지침에
휴게시간 늘리기 꼼수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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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1시40분께 인천 남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이영수(가명·71)씨는 주민들이 맡긴 반품 택배 상자 10여 개를 한쪽에 정리하고 있었다. 택배 업체에서 온 상자를 임시로 보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맡긴 반품 상자까지 떠맡은 탓이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택배 배달원 2명과 주민 1명이 차례로 상자 4개를 추가로 맡겼다. 초소에 쌓인 택배 상자는 순식간에 10개가 훌쩍 넘었다.

이 씨는 "오늘은 그래도 적은 편이지, 많을 땐 100개까지도 있었다"고 말했다. 택배 정리를 마치고 한 일은 재활용 정리였다. 재활용 수당 5만원을 받고 상자를 분리하거나 재활용 분리를 돕는 일이다.

이 씨는 폭설이 내린 이 날 아침에는 단지 내 눈을 치우는 일도 해야 했다. 이 씨는 "경비업 자체에는 택배, 주차, 단지 환경 관리가 들어가지 않는 걸 알지만, 어딜 가나 다 그렇기 때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며 "보통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일'이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홍익경제연구소가 지난 2015년 인천 부평구 소재 공동주택 265곳 종사자 1천225명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1주일에 5회 이상 택배관리 업무를 하는 경비원이 71.5%, 분리수거 업무와 주 5회 이상 단지 청소 업무를 하는 경비원이 67%에 달했다.

이처럼 경비원의 잡무가 가중되고 이웃과 갈등이 빚어지면서 지난해 공동주택관리법에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추가해 지난 9월부터 시행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부당한 지시'에 대해 제각각 해석하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경비원은 '감시근로자'라 하여 특수하게 24시간 근무에 휴게 시간을 6시간에서 최대 11시간까지 넣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일반 근로자처럼 근무하고 있어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박문순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은 "부당한 지시라는 것이 굉장히 주관적인 법 조항인 데다가 감시·단속적 업무인 경비업은 법적으로 따지면 택배, 고지서 전달 등 잡무는 포함되지 않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비현실적인 법 개정보다 휴게 시간 보장, 근무 형태 변경 등 현실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정부의 고용 안정 지침도 현장에서 혼선을 빚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폭이 16.4%로 정해지면서 공동주택에 임금 인상 보전분을 1인 13만원씩 지원하기로 했지만, 오히려 현장에서는 휴게 시간을 늘리는 등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

실제로 연수구 A 아파트의 경우 최근 입주자 회의에서 경비원들의 휴게 시간을 1시간 더 늘리기로 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이 아파트 경비원의 임금은 16.4% 인상돼야 하지만 체감으로는 8% 수준에 그치게 된 것이다.

남구 B 아파트 역시 경비원들의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한 회의를 열어 휴게 시간 조정을 한다는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관리소장이 직접 구청에 신고해야 하는데 9월 이후 관련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다"며 "근로자들이 고용불안 때문에 직접 문제 제기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부당한 지시'는 '갑질'에만 해당한다"며 "입주민 동의하에 경비의 잡무는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