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Mill)은 천재였다. 3살 때 그리스어를 배웠고 5살 때 역사 고전을 읽는가 하면 7살엔 플라톤을 원서로 읽었고 11살엔 로마 정부에 대한 책을 썼다. 그런 천재가 깊은 우울증에 빠진 건 스무 살 때였지만 그래도 자살을 하지 않은 건 로맨틱한 시에 빠진 게 약이 됐다는 거다. TV 코미디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희극 왕이자 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알코올 중독과 파킨슨병으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건 2014년 8월, 63세였다. 희극 왕 타이틀이 무색한 삶의 종말이었다. 뉴턴과 고흐, 헤밍웨이와 버지니아울프,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도 우울증 자살이었다. 차이콥스키는 '비창(悲愴)'이 아니더라도 삶의 주조(主調)가 '우울한 세레나데'였고 우울증 덩어리였던 슈만은 46년 삶을 정신병원에서 마쳤다.
미국 대통령들도 조울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18대 율리시스 그랜트(Grant)는 알코올성 우울증이었고 30대 캘빈 쿨리지(Coolidge)는 아들의 죽음으로 우울증에 빠졌다. 닉슨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이 심했다. 일본 출신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은 인권 탄압으로 25년형을 받자 우울증에 걸려 70대의 체중이 옥중 4개월간 15㎏ 빠졌다. 대중스타들의 자살도 우울증 원인이 많다. 1926년 현해탄에 몸을 던진 '사(死)의 찬미'의 성악가이자 배우 윤심덕(尹心悳)을 비롯해 '영웅본색, 천년유혼(千年遺魂), 패왕별희(覇王別姬)' 등 영화로 유명한 홍콩 배우 장궈룽(張國榮)의 호텔 투신도, 세계적인 패션모델 김다울이 파리 아파트에서 자살한 것도 우울증이었다. 다울이 '多鬱'이었나.
중국에선 '우울'이란 말을 쓰지 않고 우울증 자살을 '억욱증(抑郁症) 자살'이라고 한다. 郁은 '무성할 욱'자로 이름자에도 흔하지만 '조심스럽고 답답할 욱'자이기도 하다. 일본에선 '스스로(自) 죽인다(殺)'는 말이 끔찍하다고 '자사(自死)'로 바꿨다. 자살이든 자사든 끔찍한 거 아닌가. 아이돌 그룹 샤이니(SHINee) 멤버인 김종현(27)의 우울증 자살이 충격적이다. idol(우상)과 shiny(햇살 쨍쨍한 날)가 너무나 무색한 죽음 아닌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