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70% 이상 모욕 등 언어폭력
악용해도 진술 의존 입증 어려워
출석정지 등 섣부른 낙인 찍기도
'학폭'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에 신고를 남용해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는가 하면, 처벌에도 학교라는 공간적 특수성이 배제되고 있다. 수업연구에 집중해야 할 교사들은 학폭위원으로 참여해 한쪽 학생 편을 들어야 하는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학폭 예방과 더불어 '사후약방문식' 대처를 막기 위한 학폭위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최모(18)양은 최근 같은 반 친구 A양이 제기한 학교폭력 신고에서 가해자로 지목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반장으로서 학급을 통솔하던 최양이 자습시간에 떠들던 A양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A양은 반장인 최양을 '모욕' 가해자로 신고했고 학폭위 심의가 열리기 전까지 최양은 '피해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출석 정지 처분을 받았다.
피해 및 가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틈을 타 교내 '언어폭력'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 학폭위가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학폭의 유형과 정의 규정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일 교육부에 따르면 학폭은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상 학교 내외에서 발생한 상해·폭행·감금·협박·약취·명예훼손·모욕·공갈·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규정돼있다.
포괄적인 정의만 있을 뿐, 개별 유형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가운데 물리적인 폭력과 달리 '명예훼손', '모욕'과 같은 정신적 폭력의 경우 진술을 통해서만 조사가 가능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같은 빈틈 사이로 학폭 신고를 남용하는 학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용인의 한 중학교 교감 B씨는 "동급생을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신고하는 학생들이 늘었다"며 "신고만 해도 조사·심의·처분 등 학폭위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악용하는 학생이 있더라도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가해학생이 처분에 불복해 청구한 재심 인용률도 절반에 가까운 상황이다. 최근 3년(2014~2016)간 도교육청 가해 학생 재심청구 인용률은 2014년 53.8%, 2015년 48%, 2016년 40.7%에 달했다.
이를 두고 법률에 명시된 학폭의 정의와 관련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만들어 제도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사안이 경미해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해 학생에게 출석정지 등 긴급조치를 내리는 경우가 다수여서, 섣부른 낙인 찍기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김영미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는 "학교폭력 정의 규정을 재정비해 형법상의 개념과 다른 학교폭력의 독자적인 개념으로 좀 더 상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연신기자 juli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