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노력과 전문적 해결 능력 갖춰
내년엔 '달라진 대한민국' 기대해 본다
4명이 죽고 128명이 다친 2015년 의정부 화재 당시 정부는 그 책임이 불법주차,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Drivit) 공법 외장재, 기둥만으로 구성된 필로티(Piloti )구조 등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번 제천 화재 참사에 대해 현 정부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가족들은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며 건물 구조(構造)가 아닌 화재 진압 중심 구조(救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20명이 사망한 2층 여자 사우나실의 유리창을 왜 일찍 깨지 않았는지 물으며 오열하고 있다. 물론 주변에 대형 LP 가스통이 있었고, 화염으로 2층 접근이 어려웠다는 점은 이해된다. 그래도 29명 사망자 중 20명이 한 곳에 몰려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이번 참사는 우리의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지적하고 있다. 우선, 이번 화재를 계기로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대한 상황별 대응 방안 등이 좀 더 구체화돼야 한다. 지금 유가족들은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보다 유리창을 깨지 않아 잃은 내 어머니, 내 딸, 내 며느리가 더 그립다. 정부도 이들의 괴롭고 슬픈 마음을 헤아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화재 대응 매뉴얼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특히 그 매뉴얼에는 불을 끄는 것과 사람을 구조하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한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상황이 고려돼야 하고 화재 현장에서의 구조 상황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우리의 소방 방재 체제가 재난 극복과 인명 구조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갖추기 바란다. 둘째, 정부는 모든 책임을 불법주차, 필로티 건물구조, 드라이비트 외장재 등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매번 같은 참사를 경험하는 이유는 문제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누군가를 처벌하면 문제가 해결됐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정부와 언론은 참사가 벌어지면 그 책임을 어디에선가 찾아내는 것이 능력이고 전문성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우리가 참사에 취약한 이유는 참사를 통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깨닫기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골몰하기 때문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가 2015년 의정부 화재의 판박이라는 비판에 대해 적폐(積弊)를 들먹이지 않기를 바란다. 제천 화재 참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위법까지 이 잡듯 뒤져서 마녀 사냥식 여론재판으로 책임을 묻는 무책임한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부분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적 공분(公憤)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우는 일은 우리 사회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임을 기억하자.
2017년을 돌이켜보면 좋은 일이 거의 없었다. 전 정부는 국정을 농단했고, 현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것도, 중국이 사드를 이유로 모멸감을 주는 것도, 미국이 전쟁 불사를 운운하며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도 모두 전 정권이 무능하고 국정운영을 엉터리로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2017년 한 해 동안 적폐청산을 이유로 많은 사정(査正)이 있었다. 그런데 적폐청산은 문제 해결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화재진압과 인명 구조는 남 탓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전문성으로 해결돼야 한다. 2018년에는 남 탓하는 나태와 오만 대신 치열한 노력과 전문적 문제 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대응하는 달라진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홍문기 한세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