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육성 증언 담아낸 한 시대의 역사기록
1년여간 연재… 그동안 고생한 동료들에 박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스무 살 언저리 나이였던 한 청년은 이제 구순에 접어들었다. 전쟁 발발 30여 년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에 맞아 숨졌다. 다음 해인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그 청년의 나이가 지금 기자의 나이와 같을 때였다. 스무 살 시절 참혹했던 전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사람에게 현직 대통령이 믿었던 국가정보기관 수장에게 총에 맞아 죽고 "북한 간첩이 연루돼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정부의 거짓말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기억은 생생했을 것이다. 1980년 초등학생이었던 기자에게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30년 전은 기억에 없는 세월이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겪고 살아왔던 30년 전인 1987년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겪고 살아온 30년과 겪어보지 못한 30년 세월에는 '기억'에 따라 세월의 거리감이 좁혀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경인일보가 올해 6·25 전쟁을 전후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의 애환을 담은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취재 기자들의 말을 빌리면 아픈 기억을 묻고 살아온 이들에게 옛 기억을 더듬어 달라는 것은 아물어가는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이라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실향민들의 기억은 전쟁 전과 그 이후로 나뉘어 있었다. 첫 30년 전 기억은 고향과 가족이었다. 자신이 살았던 어릴 적 고향의 모습, 그리고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가족과 헤어지게 된 기억이었다. 이후의 30여 년의 기억은 제2의 고향인 인천에서 살아온 고단한 삶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후 70년 실향민 삶을 기록한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는 취재 과정에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고 쓰는 사람 모두 숙연했다. 70년을 거슬러 온 이들은 삶과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육성 증언을 담아내려면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그들의 '기억'은 단순한 실향민의 삶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역사(歷史)'였기 때문이다. 기자에게는 기록으로 남겨야 할 중요한 과제였다. 취재팀은 사료와 자료를 꼼꼼히 뒤져가며 실향민들의 기억을 확인했다. 지금도 취재팀원들의 자리에는 한국전쟁사와 관련한 각종 사료를 비롯해 오래전 출판된 북한 지역의 지리, 인문, 경제서 등의 고서(古書)가 수북하다. 1년여 동안 연재한 마지막 기사(50회)가 오늘 자 9면에 실렸다. 휴일도 반납하고 무덥고, 추운 날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기사를 쓴 동료들에게 늦게나마 지면을 빌려 박수를 보낸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