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후 70년 실향민 삶 이야기 다룬 기획
그들의 육성 증언 담아낸 한 시대의 역사기록
1년여간 연재… 그동안 고생한 동료들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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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대학에 입학했을 때가 30년 전인 1987년이었다. 그해에는 유난히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했다. 새해 첫날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수백 명 학생이 시위에 나섰다. 당시엔 세계적으로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월 14일에는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의 소재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던 중 숨졌고, 그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 미사에서 고문치사와 관련된 정부의 은폐 조작이 폭로됐다. 한 달 뒤 6월 9일 연세대 정문에서 경영학과 2학년인 이한열이 전경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져 7월 5일 숨졌다. 이한열 열사가 쓰러진 다음 날 넥타이부대까지 합세한 '6·10항쟁'은 대통령직선제와 민주화 시국사범 석방 등을 담은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8월 29일 용인의 (주)오대양 공장에선 집단 자살한 32명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10월 12일엔 국회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가결해 헌법 제10호(제9차 개정 헌법)가 공포됐다. 11월 29일에는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숨졌다. 1987년에 일어난 사건 하나하나가 다큐멘터리나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스무 살 언저리 나이였던 한 청년은 이제 구순에 접어들었다. 전쟁 발발 30여 년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에 맞아 숨졌다. 다음 해인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그 청년의 나이가 지금 기자의 나이와 같을 때였다. 스무 살 시절 참혹했던 전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사람에게 현직 대통령이 믿었던 국가정보기관 수장에게 총에 맞아 죽고 "북한 간첩이 연루돼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정부의 거짓말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기억은 생생했을 것이다. 1980년 초등학생이었던 기자에게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30년 전은 기억에 없는 세월이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겪고 살아왔던 30년 전인 1987년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겪고 살아온 30년과 겪어보지 못한 30년 세월에는 '기억'에 따라 세월의 거리감이 좁혀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경인일보가 올해 6·25 전쟁을 전후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의 애환을 담은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취재 기자들의 말을 빌리면 아픈 기억을 묻고 살아온 이들에게 옛 기억을 더듬어 달라는 것은 아물어가는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이라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실향민들의 기억은 전쟁 전과 그 이후로 나뉘어 있었다. 첫 30년 전 기억은 고향과 가족이었다. 자신이 살았던 어릴 적 고향의 모습, 그리고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가족과 헤어지게 된 기억이었다. 이후의 30여 년의 기억은 제2의 고향인 인천에서 살아온 고단한 삶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후 70년 실향민 삶을 기록한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는 취재 과정에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고 쓰는 사람 모두 숙연했다. 70년을 거슬러 온 이들은 삶과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육성 증언을 담아내려면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그들의 '기억'은 단순한 실향민의 삶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역사(歷史)'였기 때문이다. 기자에게는 기록으로 남겨야 할 중요한 과제였다. 취재팀은 사료와 자료를 꼼꼼히 뒤져가며 실향민들의 기억을 확인했다. 지금도 취재팀원들의 자리에는 한국전쟁사와 관련한 각종 사료를 비롯해 오래전 출판된 북한 지역의 지리, 인문, 경제서 등의 고서(古書)가 수북하다. 1년여 동안 연재한 마지막 기사(50회)가 오늘 자 9면에 실렸다. 휴일도 반납하고 무덥고, 추운 날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기사를 쓴 동료들에게 늦게나마 지면을 빌려 박수를 보낸다.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