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재수생 굴레 씌우고
대학 입학생들에 학교 적응보다
반수생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불합리한 제도라는 것 인식하고
교육당국은 합리적 선택 해주길

사실 재수생이라는 단어를 외국어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비교적 우리와 입시제도가 유사하다 할 수 있는 일본의 경우 낭인(浪人)이라는 단어로 재수생을 표현할 정도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낭인은 옛날 일본의 방랑 무사를 일컫는 말인데, 세월이 흘러 일정한 직업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지칭해 왔다.
재수생에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고 있는데, 사법시험이 폐지된 이후 로스쿨 졸업생 중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辯試 浪人', 약학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PEET考試 浪人',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公試 浪人' 등 다양한 신조어가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변호사 시험의 경우 법무부는 매년 입학 정원의 75% 수준인 1천500명 선에서 합격자를 관리하고 있어, 불합격자는 2012년 214명에서 매년 200~300명씩 늘어나는 추세이다. 실제로 매년 '辯試 浪人'이 300명가량 증가하고 있어 금년에는 시험 불합격률이 50%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8학년도 수능 응시자 통계를 보면 재학생 44만4천874명(74.9%), 재수생 13만7천532명(23.2%), 검정고시 등 기타 1만1천121명(1.9%)으로 나타나 해마다 재수생 숫자는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공약에서 대입제도 개편의 핵심 키워드로 '단순'과 '공정'을 제시했고, 얼마 전 개최된 국가교육회의 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도 "새로운 입시 제도는 학생·학부모 입장에서 볼 때 공정하고, 누구나 쉽게 준비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여당은 수능 시험이 주입·암기식 교육을 심화하고 점수로 학생을 한 줄로 세워 입시 경쟁을 조장한다며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를 추진해 왔다.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작년 8월 당시 중3생들이 치르는 2021학년도 수능부터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현재 2과목에서 4과목 또는 7과목으로 확대하는 안을 내놓았는데, 커다란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개편안 발표를 1년 연기한 바 있다.
수능 절대평가 확대에 대한 비판 여론 중 쟁점은 바로 정시 전형은 줄어들고, 수시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늘어난다는 것인데, 대통령 말대로라면 수시 학종을 줄여야 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학종은 각종 스펙 쌓기는 물론 모든 교과목의 내신 관리까지 해야 하고, 선발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아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할 바에는 차라리 정시 모집을 다시 늘리고,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자는 의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수시 전형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능 점수 1점에 매달리며 친구들과 경쟁하는 교육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수능은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수능 절대평가 하에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학종의 경우 대학 입장에서는 내신 성적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능을 위한 사교육이 아니라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이 성행하는 것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현재의 대입 제도는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10여만 명의 청소년들에게 재수생의 굴레를 씌우고, 대학에 입학한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기 보다는 반수생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불합리한 제도라는 점을 교육 당국은 제대로 인식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해 주길 바란다.
/문철수 한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