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8조' 은행에 잠자고 있어
1400조 가계빚 '내수진작' 발목
한·미 금리 역전 가능성 '악재'
고용창출형 신성장동력산업에
단기자금 흘러가게 유도해야

다시 말하면,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서 자금 조달 규모가 감소해 현금 보유가 늘고 투자자들의 대기성 투자 자금이 확대됨에 따라 저금리로 법인형 MMF(머니마켓펀드) 같은 현금과 6개월 이하 단기금융상품 설정액이 급증한 반면 중·장기 금융상품 수요가 줄고 증시로의 자금 유입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실물경제 부문으로 자금이 선순환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 부동자금'이란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양도성예금증서, 환매조건부 채권(RP), 투신사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단기 자금에 무려 1천조원의 금융이 집중되어있다는 것은 경기 불확실성 하에서 금융시장이 소위 '돈맥경화증'에 걸려 자금이 돌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이 투자를 기피해 돈이 '은행에 잠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수시로 현금화가 가능한 요구불예금의 회전율과 기업 간 결제자금으로 사용되는 당좌예금의 회전율이 모두 하락하였기 때문이다. 2008~2009년의 예금회전율은 5.1회를 기록한 뒤 해마다 하락해 최근엔 4회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이 결과, 시중 통화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통화승수'는 2017년 5월 21.9를 기록해 2000년대 들어 최저수준으로 추락했다. 이것은 미국발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세계가 일제히 금리를 대폭 인하했던 2008년 하반기의 통화승수 26.2보다 크게 떨어진 수치다.
이같이 경제 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와 재정정책 등의 경기 대책이 '백약이 무효'이다. 즉, 본원통화를 늘리고 시중은행 대출과 통화량을 증가시켜 금리를 내리면 소비와 투자가 증가할 것으로 정책당국은 기대하지만, 상기와 같이 화폐유통속도가 느려지고 통화승수가 감소하면 상기 정책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2016년 국내총생산(GDP) 1천664조원의 85%에 해당하는 가계부채 1천400조원이 내수 진작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구당 부채 평균 7천270만원의 금융부담을 지고 있는 가계로부터 소비 촉진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실로,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다. 가계부채는 금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최근에 한국은행이 2011년 이후 6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 금리를 연 1.25%에서 연 1.5%로 0.25%포인트 올렸다.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대출 이자율도 높아지기 때문에 각 가정의 빚 부담이 커진다. 사람들은 빚을 갚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종전보다 소비를 줄인다. 그러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파는 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은행에서 빚을 내 부동산을 사던 사람들도 이자 부담 때문에 구입을 포기한다. 이로 인해 부동산가격이 떨어지면 기존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되팔 때 손해를 입게 된다. 저소득층은 금융부채를 제대로 갚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면 은행 등 금융기관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17년 3월과 6월에 이어서 12월 13일 기준금리를 1.00~1.25%에서 1.25~1.50%로 0.25%포인트 인상함에 따라 금년엔 한·미 금리 역전(逆轉)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 상단이 한국은행 기준금리(1.50%)와 같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작년 12월 13일 금년에도 세 차례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경우, 미국의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아지면 외국인 자본 유출이 예상된다. 여기에 북한 핵무기로 인하여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면 외화자금의 해외유출은 명약관화하다. 이것은 바로 '제2 외환위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는 올해 지방 선거를 겨냥해 인기영합적 복지행정을 지양하고 건전한 재정 기조하에서 복지지출의 효율화를 도모함과 동시에 노동개혁을 추진해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양시켜 '고용창출형 성장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금융당국은 '가상화폐의 광풍'에 휩쓸리지 말고 현재 은행에서 잠자고 있는 1천조원의 단기부동자금이 신성장동력산업에 투자될 수 있도록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금융상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이 경우, 조만간 한·미금리 역전으로 외국인 자본이 대거 해외로 유출되더라도 한국경제는 엄동설한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임양택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