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여기저기서 잇단 사고
제천참사 주차질서만 지켰어도
많은 생명 구할 수 있었을텐데
올해엔 모든 국민이 법과
공동체 기본질서 제대로 지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 가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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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
새해 들어서자마자 정부에서는 올해의 국민소득이 드디어 3만달러를 넘어서서 그야말로 우리가 꿈꿔오던 30~50그룹의 나라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찬 전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 20여 년 동안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소위 마(魔)의 벽(?)이라는 3만달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을 두고 정치계나 경제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마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60여 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어엿한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경이로운 발전을 이룩한 나라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혼란을 겪기도 했고, 경제적 위기도 맞았으며, 노동운동의 시련과 민주화의 고난을 거쳐 오긴 하였지만,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힘은 누가 무어라 해도 바로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힘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온 국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아직도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적인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정치적 후진성 때문에, 재벌의 횡포 때문에, 노조의 폭력적 저항 때문에, 심지어는 우리의 후진적 국민성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새로 권력을 잡은 쪽에서는 선진국이 되는 것보다는 먼저 통일을 해야 하고, 경제성장보다는 분배를 통한 공평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이란 과연 어떤 나라를 말하는가? 선진국에 대한 정의는 매우 애매하여 하나로 통일된 개념은 없지만, 대체로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여 경제발전을 이루고, 이로 인해 정치, 문화, 교육, 복지 등이 골고루 발달되어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삶의 질이 높은 나라라고 요약해서 말하고 있다. 유엔이나 OECD에서 발표하는 매우 다양한 지표들을 비교하여 매년 선진국 순위를 정하고는 있지만, 이것조차도 정확한 통계가 밑받침되지 않으면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많은 국제기구에서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넣어두고 있으며, 2017년 IMF가 정한 경제대국순위에서 한국은 캐나다에 이어 세계 8위에 올라있고, 유엔개발프로그램의 인간개발지수로는 18위로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 그룹 다음으로 최하위에 속한 25위 정도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지표나 지수에 나타난 선진국 순위와는 관계없이 실제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통계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부탄이라는 언론보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기술과 산업이 발달해도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과는 비례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선진국이라고 그 나라 사람들 모두가 선진국민이 아니듯이 어느 사회나 행복을 느끼는 것도 상대적일 수 있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이나 가치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십 수년 전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다고 알려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했을 때 교통체증이 매우 심한 상황에서도 교차로 꼬리물기를 하지 않는 그곳 사람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한 기억이 있다. 물론 운전면허취소라는 엄중한 벌칙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이는 결코 법률위반에 대한 벌칙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평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시점은 교차로에서 꼬리물기가 없어지는 날이라고 말해왔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한 약속, 즉 법을 제대로 지켜나갈 때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제천의 화재참사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연달아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주차질서만 제대로 지켰어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주차질서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되는 일이 계속되는 나라에서 무슨 선진국이며 선진국민이 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올해부터는 부디 모든 국민들이 교통질서와 같은 공동체의 기본질서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나가는 일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도 선진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양윤재 대우재단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