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종목'·'동호인 스포츠' 굴레 못 벗어
후원사 구하기 힘들고 정부 지원 부실한 실정
유망주들 세계적 선수 위해 국민적 관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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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문화부장
지난 한 주, 국내외적으로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화제는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22·한국체대)이었다.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로 꼽히는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정현은 '4강(준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내며 한국을 넘어 아시아 테니스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갔다. 역대 한국 선수 메이저대회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물론 세계랭킹과 상금에서도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을 넘어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현 선수가 더 빛난 것은 테니스 불모지에서 이런 성과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테니스는 '비인기 종목' '동호인 스포츠'라는 굴레에 둘러싸여 있다. 후원사를 구하기 힘들어 선수들이 자력으로 훈련비 등을 충당해야 한다는 얘기는 이미 알려졌고, 엘리트스포츠로 자리잡기에는 여타 종목에 비해 그 지원이 부실한 실정이다. 테니스부를 운영중인 초중고교 숫자도 적지만, '그러잖아도 좁은 운동장에 테니스 전용구장을 만들어 테니스부를 운영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특혜주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일부 학부모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것도 우리 테니스계의 현실이다.

처음엔 테니스가 '비인기종목'이라는데 반신반의했다. 주변에 동호인들도 꽤 있고, 테니스장도 간간이 볼 수 있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정현 경기 관련 취재를 지켜보며 실감하게 됐다. '동호인 스포츠' '비인기 종목'이라는 꼬리표가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언론에서는 지난주 정현의 '신화' '역사'쓰기를 따라가며 그와 관련된 신드롬을 분석하고, 그의 스토리부터 가족관계 등 모든 것에 집중했다. 경인일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그의 경기가 열리는 날엔 기자들이 그 열기를 담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시민들의 열띤 반응을 생각하고 거리로 나섰다. 지난 22일 펼쳐진 정현과 前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와의 16강전이 그랬고, 24일 오전 11시 테니스 샌드그렌과 벌어진 8강전도 정현을 응원하러 많은 이들이 모였을 것이라는 막연한 모습을 그렸다. 유동인구가 많이 몰리는 역 대합실이나 병원로비, 은행 등에 갔을때 생각했던 그림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대합실엔 노인 몇분만 앉아계셨고, 병원이나 은행 그 어디서도 응원열기를 찾긴 힘들었다.

그나마 정현의 모교인 삼일공고 교장실에서 김동수 교장을 비롯 테니스 코치들과 후배선수들이 한데 모여 응원하는 모습이 훈훈함을 안겼다. '피겨 김연아 선수나 수영 박태환 선수가 불모지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것과 정현이 다르지 않다'는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삼일공고 김 교장은 "정현이 때문에 테니스 룰도 알게 됐다. 후배들이 정현이를 본받아 제 2, 3의 현이가 나와서 학교를 넘어 국가를 위해 선양했으면 좋겠다"고 기쁨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테니스 코트장이 맨바닥인데 하드코트로 깔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법률적 문제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가 나오는데 국가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4강 진출 후 경인일보와 전화 통화로 심경을 밝힌 정현의 아버지 정석진씨도 마찬가지였다. "(호주 오픈이 열린 멜버른)여기에선 예선부터 정현에게 사인해 달라는 팬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도 테니스 유망주들이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유망주를 잘 육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비인기 종목이 인기종목이 되는 것은 크게 두가지 같다. 정현처럼 훌륭한 선수가 나와 국민적 관심을 갖게되거나 여자 아이스하키처럼 정치적으로 관심을 끌어 올려 반짝 인기종목으로 육성시키는 것.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누구나 전자여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제2, 3의 정현이 나올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이어나가길 기대해본다.

/이윤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