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현에 대한 환호
제2 정현 나올 때까지 이어질지…
이성적 근거없이 만들어진
정치적 지지는 아무 책임감 없이
또 다른 '~빠'가 만들어질 때까지
맹목적으로 지속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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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정현이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하자 대중은 열광하였다. 우리 국민들이 국가대항전이 아닌 개인스포츠에 주목하는 현상은 낯설지는 않지만, 스포츠 자체가 문화적 기호(嗜好)라는 점에서 기이하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테니스 경험이 전혀 없거나, 아파트 단지의 테니스장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데에 기꺼이 동조했던 이들도 있다. 이제 그의 안경이나 신발, 그리고 라켓이 관심을 끌게 되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테니스 레슨을 권할 것이다. 정작 신세대 정현의 자유로운 열정이나 성장과정, 그와 상대한 페더러가 건네준 배려는 그의 성공신화를 장식하는 에피소드로 동원되었다.

정현현상은 그 이전에 나타났던 박세리나 김연아의 신드롬과 다르지 않다. 오로지 세계적인 선수의 반열에 올라야 관심을 받고 그를 위해 희생되는 다른 것들은 가려지는 지극히 단선적이고 동질적이고 목표상향적인 사고와 행태가 지배해왔다. 탄탄한 생활체육 기반, 폭넓은 사회시설과 제도, 수많은 일선지도자들과 그 직업환경 등은 뒷전이다. 외국인 지도자와 훈련시스템도 히딩크와 고드윈처럼 신화와 전설로 부풀려지고 그 기여의 내실은 묻힌다. 오로지 개인 선수의 화려한 성공 이미지만 환호 받으면서 유포되고 소비된다.

배경과 결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성찰 없이 오로지 목표만을 위하여 치닫고 그 이미지만 감성적으로 소비되는 행태는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암호화폐 열기처럼 지극히 경제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는 경제행위도 다르지 않다. 투자인지 불분명한 암호화폐 거래는 평창롱패딩을 사려는 장사진과 유사하게 반복되지만 그에 필수적인 블록체인 등은 뒷북치듯이 거론된다. 암호화폐 투자로 거부가 된 사례가 기사화되고 이를 모르는 사람은 시류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간주된다. 즉, 우리 사회의 목표지상주의는 동질성 선호로 인해 강화된다. 남들이 하면 해야 하고 그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왕따 당하거나 비난받거나 바보로 취급된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행위는 타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창조적 모험으로서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적 파장이나 영향력이 훨씬 큰 경제적 행위나 국가와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시선을 필요로 한다.

오래전 미국 외교관이자 학자인 그레고리 핸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저서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한국 정치는 사회의 동질성과 중앙집권적 통일성이 상호 악순환하면서 원자화된 개인, 가족, 집단은 오로지 중앙권력을 향해 질주한다고 요약된다. 그의 통찰력은 조선과 대한민국 초기에 적용되었으나 대기업과 노동조합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여전히 빛을 발한다.

권력에의 목표지상주의와 동질성의 강요는 정치인에 대한 팬덤으로서 이른바 "~빠"문화라는 일상적 행위에도 나타난다. 민주화와 자유화는 큰 소용돌이를 해체하기보다는 그 부정적 유산들과 결합한 작은 소용돌이들을 낳았을 뿐이다. 처음에는 정치인이나 정당 등에 의해 동원되었던 지지가 점차 지지 동인(動因)들보다는 지지대상의 이미지에 대한 감성적 선호로 대체되었다. 지지의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지다 보니 지지자간의 동류선호를 통한 확증편향만 강화시켜가고 있다. 즉, 특정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사람들끼리 폐쇄적 집단을 만들어 그 안에서 서로의 믿음을 키워가는 양상이다. 결과적으로 특정한 이념과 정책을 위해 특정 정치인을 수단으로 지지하던 양상에서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일이 목적으로 전치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정치인을 위하여 그와 대립하는 정치인이나 정책 등에 막무가내로 비판하는 반정치적 현상이 발생한다.

정현에 대한 환호는 또 다른 정현이 나올 때까지 맹목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성적 근거없이 만들어진 정치적 지지는 스스로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또 다른 "~빠"를 만들 때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정현신드롬을 돌이켜 보듯이 정치적 "~빠"문화 역시 공론적 성찰을 요구한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