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독점 큰수익 얻는 '데이터'
누군가 먹고 누군가엔 먹히는 것
우리는 모두 대지에 속한 존재
한국 곡물자급률 23.8%에 불과
식량자급률 OECD국가중 꼴찌
정말 지켜야 할 미래먹거리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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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자치와 자급 공부모임을 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월요일 저녁마다 모여 책도 읽고 생각도 나누는 자리에는 먹거리도 빠지지 않는다. 여름에는 밭에서 딴 딸기며 참외며 수박, 찐 감자나 옥수수가, 겨울에는 감말랭이나 고구마말랭이 같은 말린 것들이 단골 메뉴다. 생각도 나누고 먹거리도 나누며 이웃의 삶도 함께 나눈다. 그저께 공부모임에서는 낯선 먹거리 용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미래 먹거리'라 하는 것이다.

요즘 계속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미래 먹거리란 말을 쓰는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이상해요. 먹을 게 하나도 안 보이는데 왜 미래 먹거리래? 맞아요. 4차 산업혁명이 미래 먹거리를 만든다는데 하나같이 먹지도 못할 것이더만. 그렇죠? 나도 그랬어. 사람이 먹지도 못할 것을 왜 먹거리라고 해? 사람이 밥을 먹지 데이터를 먹고 사나? 먹거리가 공장이 아니라 저 컴퓨터 안에서 나온다는 거지. 야 공장에서 나온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먹거리가 땅에서 나오지 어째 공장에서 나오냐. 말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아 그런 거야? 난 어디서 보니 미래 먹거리가 '곤충'이라고 하기에 그건 줄 알았는데. 으악! 뭐라고? 하하하하! 박장대소로 끝났지만 웃음의 뒤끝에는 무엇인가 씁쓸함이 남았다. 마을의 글동무들에게선 가끔 예리한 직관이 번득인다. 삶으로부터의 통찰이다.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다. 다시 머리를 맞대본다. FTA 할 때는 차 팔아서 쌀 사 먹고 살라고 하더니, 이제는 데이터가 돈이 되고 밥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 속에는 사람을 살리는 진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어디에도 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간이 인간인 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식량과 그 토대인 땅(자연, 지구)에 대한 고민이 말이다. 미래 대안 식량으로 '곤충'을 개발한다는 건 농업에 대한 포기를 전제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발상이다. 인공지능은 전기를 먹고 인간은 곤충을 먹고 사는 시대가 목전에 와 있다. 하우스 농업 기술은 기름을 먹는 작물을 키우더니 이제 전기로 작물을 키우는 스마트 팜이 혁신 농업이라 한다. 그러나 그 전기는 어디서 오는가. 아마 곤충도 전기가 키우겠지.

그러나 인간은 '영양소'를 먹고 단백질과 지방 칼슘 등등으로 이루어진 물질의 결합체가 아니며, 곤충도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이다. 생명 존재인 인간은 다른 생명 존재에 기대어 살아간다. 어쩌면 저 미래기술들은 산업사회의 기술문명보다 더 가혹하게 생명과 생명들이 기대 사는 관계와 연결의 고리들을 끊어 놓을 기술은 아닐까. 인간은 영양소를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밥을 먹고 사는 존재다. 밥에 들어 있는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모두 제거하여 인간을 오직 몸뚱이로 환원하고 난 후에야, 식량을 그 몸뚱이에 처넣어 가동시킬 연료로 환원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미래 먹거리' 같은 저런 생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인간과 밥, 인간과 식량, 인간과 토지와의 관계는 생물체와 영양소의 관계가 아니다. 밥이 존귀함을 잃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잃는 것이다.

데이터를 '21세기의 원유'라고 한단다. 그럼 인간은 그 데이터를 만드는 유전(油田)인 셈이다. 20세기 문명을 가동시켰던 원유는 고대 생물의 화석에서 왔다. 오늘날의 데이터 밭은 살아있는 인간의 활동이다. 석유는 대지 속에서 나왔지만 데이터는 광대한 전산망 속에서 생성되고 유통되고 소비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독점하고 큰 수익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먹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먹히는 것이다.

대지에 속한 인간은 대지의 의미가 낮아질수록 그의 존재의 의미도 땅과 함께 낮아질 수밖에 없다. 땅이 자원을 내놓아야 할 창고가 되고 생산력을 높이라며 닦달당하고 식량 공장이 될 때에는 땅에 속한 존재 역시 모욕당하고 수탈당한다. 땅에 속한 존재는 동식물만이 아니다. 농민만도 아니다. 우리 모두 대지에 속한 존재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들 중 꼴찌이고, 곡물 자급률이 23.8%에 불과하다. 지켜야 할 미래 먹거리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는가.

/채효정 정치학자·오늘의 교육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