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애인을 마냥 기다리다가 홍수가 져 빠져 죽었다는, 사기(史記)의 '미생지신(尾生之信)'을 들지 않더라도 약속과 신의는 중요하다. '하늘에 한 맹세(Swear to God)' 등 거창한 약속과 약조는 더욱 그렇고 '단단히 몇 번씩 다짐하고 또 다짐한 약속(斷斷相約)'이 아닐지라도 그렇다. 손가락 하나 안 건 약속, 지나가는 말처럼 한 약속까지도 그 믿음과 신의가 중요하기는 다를 바 없다. 그리스 신화의 시칠리아 목동 다프니스는 물의 요정을 사랑, 영원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은 벌로 눈이 멀었고 예수는 피로써 약속했고 보혈(寶血)로 언약했다. 옛 중국인들도 피를 마시며 언약했다. '계구마지혈(鷄狗馬之血)'이라고 했다. 천자(天子)는 소나 말의 피를 마시며 약조했고 제후(諸侯)는 개나 돼지 피를, 대부(大夫)는 닭의 피를 마시며 약정(約定)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왕래하자, 합동 연습과 공연을 하자'는 언약도 피를 마시며 할 걸 그랬나! 북측은 지난 19일에도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을 단장으로 한 (남측 공연장) 사전 점검단을 보내기로 통보했다가 그날 밤중에 취소했었다. 그랬다가 이틀 후 내려와 여왕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29일 밤중에도 다음달 4일 금강산 남북 합동 문화공연을 취소한다고 일방적 통고를 했다. 금강산 공연에 다량의 경유도 보내기로 했고 평창올림픽 개막 전날에 벌인다는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도 '우연의 일치지 올림픽과는 관련 없다'고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북한 대신 해명했건만 취소한 이유가 뭔가. 그게 '한·미 군사훈련은 영구 중단하라면서 올림픽 전날 인민군 열병식은 왜 강행하느냐'는 남측 언론 보도 탓이란다.
남북은 동족이지 동국(同國)이 아니다. 국가간 약속과 약조는 그만큼 중대사다. 북한은 1인 독재자가 만사를 전결(專決)한다. 김일성 3대(代) 뚱보를 중국에선 金三반(진싼팡:김삼반) 또는 金반子(진팡쯔)라 부르고 그 세 번째 뚱보가 김정은이다. 만사를 그가 결정한다. 중국이 혈맹인 북한을 비판한 노래에 '계비단소(鷄飛蛋消:지페이딴샤오)'라는 게 있다. 닭은 날아가고 달걀은 깨졌다는 뜻이다. 통일부장관은 들어봤는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