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혼과 함께 성장한 '무궁화'
그 정신은 우리 겨레 부지런함과
날마다 새로운 진취성 보여줘
흰색은 순결하고 진실되며
청렴한 민족성을 표상하는 것
성경의 '아가서 2장1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가서'란 이스라엘 왕 솔로몬(Solomon)이 지은 것으로 자신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노래한 예찬서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합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며, 다시 만나는 것을 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이를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랑의 드라마로 해석하기도 하며,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를 그리스도에 비유하기도 한다. 샤론의 장미는 '아가서'에서 파생된 무궁화의 영문명이다. 이는 히브리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어판에서는 '샤론의 꽃' 혹은 '샤론의 수선화'로 표기하곤 했다.
그렇다면 과연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가 무궁화가 맞을까? 실제로 샤론은 이스라엘 가나안 지방의 한 지명이며, 장미는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야생 수선화나 서양금사매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꽃의 생김새나 자태(姿態)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았을뿐더러 당시 무궁화가 유대지역에 서식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궁화가 '샤론의 장미'가 아니라는 근거 또한 없다. 무궁화의 학명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커스(Hibiscus syriacus L.)라고 하여, 중동지방을 거점으로 생겨났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을 유추해 볼 때, 무궁화를 성경에 나오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샤론의 장미'로 단정 짓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무궁화가 태고(太古)적부터 우리나라에 존재했고 상고시대의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근수(槿樹), '환단고기(桓檀古記)', 일제강점기 초기에 계연수(桂延壽)가 편찬했다는 한국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책에서는 환화(桓花), 천지화(天指花)로 표현했다. 특히 '단군세기(檀君世記)'에는 무궁화에 대한 많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후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무궁화가 우리나라에서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고, 이 땅에서 무궁화가 자리 잡기까지는 무수한 진화(進化)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는 무궁화의 배수체화 현상(식물이 적절치 않은 유전환경에서 변이를 일으키는 것)에서 추측할 수 있다.
이런 무궁화가 그동안 숱한 인고(忍苦)의 세월을 거쳐 민족의 혼(魂)과 함께 성장하고 발달해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무궁화 정신이다. 무궁화 정신은 부지런함과 일신(日新)하는 우리 겨레의 진취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흰색은 우리 겨레의 순결하고 진실하며 청렴한 민족성을 표상하는 것이다.
'샤론의 장미' 또한 성경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樂園)으로 표현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당시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물을 끌어다 비옥한 땅을 만들어 결국 '샤론의 장미'를 비롯한 갖가지 꽃들이 서식할 수 있는 풍요로운 땅이 된 것이다.
요컨대 나라꽃 무궁화가 샤론의 장미가 맞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랑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노래한 아가서와 그 안에 등장한 샤론평야와 장미, 그리고 유구한 세월의 희로애락을 겪은 우리 민족과 무궁화는 왠지 닮은 것 같다.
/한광식 김포대학교 CIT융합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