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권력유한의 법칙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문단의 두 원로가 참담하고 비루한 시비에 휘말려 대중의 서늘한 시선에 갇힌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최영미 시인이 두달전 발표한 시 '괴물'의 주인공 'En(은)선생'은 최근 한 여검사가 불지른 한국판 미투(me too)운동으로 다시 대중 앞에 소환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작가 이외수는 지난해 여름 화천군수를 욕보였던 일이 곪고 곪아 이제는 화천시와의 법적 분쟁, 세속의 뻘밭으로 하강할 모양이다.
En선생의 처지는 매우 고약하다. 작품속 이니셜과 현실속 실명 사이에서 적절한 대응이 곤란해졌다. 최영미는 'En선생'이라 했지만 세상은 두 글자 실명 '○○'을 지명한지 오래다. 인터넷에서도 실명 '○○'으로 검색해 'En선생' 콘텐츠를 찾는 게 손쉽다. 진보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민중의 편에서 반독재투쟁을 벌였던 노벨상 후보, 시인 '○○'은 이제 상습 성추행의 혐의를 뒤집어썼다. 하지만 최영미는 작품속 'En선생'을 시인 '○○'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원로시인 '○○'은 이니셜에 갇혀버렸다. 최영미는 살아있는 문학권력을 영리하게 허물고 있는 중이다.
화천군으로부터 이외수문학관이 있는 감성마을에서 퇴거 통보를 받은 이외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법적으로 맞설 뜻을 밝혔다. 그동안 화천군을 위한 자신의 행적을 열거하면서, 자신에 대한 퇴거 결정과 관련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화천군수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렸을 때, 그는 자신의 문화권력을 과신해 남용한 것 아닌가 싶다. 작가 이외수를 아끼는 독자라면, 문단의 원로가 최후의 작품에 매진하는 대신 세속의 이해를 따지는 일에 떨어진 사실 자체가 안타까울 것이다. 혹독한 대가다.
오늘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하지만 축제의 설렘 보다는, 올림픽 이후의 한반도 명운이 더욱 마음에 걸리는 요즘이다. 분절된 역사인식과 갈라진 이념을 화해시킬 권위가 사라진 시대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En선생' 사태요 이외수 사건이다. 문화권력의 권위마저 허접해질까봐….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