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8년 청산 부산방송 인수
서울 인사동에 MBC 사옥 차려
인수·합병 반복 실크재벌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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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태 의원은 조방낙면사건 이후 철저한 야당정치인으로 거듭나면서 이승만 정부의 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탄압수위가 높아지자 사업운영에도 지장을 받았다.

김지태는 한국과 같은 정치풍토 하에서 기업가가 정치활동을 병행하는 데 한계점이 있음을 절감했다. 그는 1954년 3월10일 집권당인 자유당에 입당해 5·20총선에서 부산 갑구에서 제3대 국회의원으로 재선됐다.

그러나 총선 직후인 1954년 11월29일 자유당 의원총회에서 제명처분을 받았다. 이승만을 종신대통령으로 추대하고자 획책한 소위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작업에 반대한 것이 이유였다.

이후 김지태는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때 자유당 공천에서 배제되자 부산진구 갑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하면서 정치와의 인연을 끊었다.

김지태가 1958년에 8년여의 정치인 생활을 청산하고 사업에 전념하면서 한국생사그룹은 국내 최대의 실크재벌로 성장했으며 정계 은퇴 무렵 그가 새롭게 착수한 사업은 부산문화방송의 인수였다. 해방 이후 부산의 실업계 대표로 또한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언론의 위력을 실감했던 것이다.

그는 침체상태에 있는 부산일보의 중흥에 열정을 쏟는 한편 1957년 김상용으로부터 부산문화방송 주식회사를 인수했다. 김지태는 부산문화방송을 전국적인 네트워크체제로 전환한다는 목표로 1958년 4월 서울에 한국문화방송(MBC)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종로구 인사동 네거리 동일가구빌딩에 위치했다.

이로써 김지태는 신문과 방송을 거느려 종합매스컴 그룹의 전환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김지태는 한국수출산업의 사세확장에도 주력했다. 1954년 11월 춘천의 뽕나무밭(桑田)을 경영하는 동방생사를 인수해 계열기업으로 편입했다. 동방제사는 1937년 일본인 암촌장시(岩村長市)가 춘천시 우두동에 설립한 암촌제사소(岩村製絲所)가 모체이다.

암촌제사소는 이외에도 우두동 일대의 광활한 뽕나무밭을 겸영했으나 이후 군수용 제사공장으로 명맥을 유지한 뒤 해방 후 동방제사소로 개칭됐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수출산업이 불하했던 것이다.

이로써 한국수출산업은 산하에 경남합동제사, 원주제사, 대한생사, 동방제사를 갖추게 됐고 경남북 및 강원도 일대의 생사공급권을 장악한 국내 최대의 제사메이커로 부상했다. 1955년에 한국수출산업은 한국생사(韓國生絲)로 개칭됐다.

1958년 5월에는 적산인 삼화(三和)고무를 인수했는데 이 회사는 1934년 7월18일 부산 범일정(凡一町) 1290에서 고무신, 범포화(帆布靴) 등 신발과 타이어, 고무벨트, 기타 고무제품 제조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동사는 부산에 있는 13개의 영세 고무공장을 흡수 통합해서 설립한 만큼 자본금 76만5천원(약 80억원)을 전액 출자해 설립했다.

경영진으로는 사장 미창청삼랑(米倉淸三郞), 전무 조야좌시(島野佐市), 이사 신정항부(新井恒夫), 북촌충좌위문(北村忠左衛門), 감사 미창청태랑(米倉淸太郞) 등인데 미창청삼랑과 미창청태랑은 1926년에 부산 대창정(大倉町) 10에서 설립된 자본금 50만원의 환대호모(丸大護謨)공업의 설립자들이기도 하다.

동사는 국내에 고무원료를 독점공급하던 삼정(三井)물산의 자본을 지원받아 타이어부터 고무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생산을 획책했는데 1935년 10월에는 5만5천원을 증자했다가 1937년 9월에 다시 9만원을 감자했다.(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 1941, 145면)

이때까지 수입에 의존했던 자동차 타이어의 국내생산이란 신지평이 열린 것이다. 삼화고무는 1937년까지 민수용 고무제품을 생산했으나 이후부터 해방 때까지 군수공장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1950년 7월에 육군용 군포화제조(軍布靴製造)공장으로 지정됐다. 1951년 7월에 김예준(金禮俊)에 불하됐다가 1958년 5월에 한국생사그룹에 인수돼 포화(布靴), 장화(長靴), 고무신, 타이어, 고무벨트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착실히 성장했다.(김지태사장창업35년사, 2235면)

한국생사그룹은 모기업인 조선견직을 비롯해 한국생사, 동방제사, 원주제사, 대한제사, 경남합동제사, 삼화고무, 부산일보, 문화방송 등 다양한 기업군을 거느려 1950년대 후반에는 국내 최대의 실크재벌로 거듭났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 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