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 적고 다정했던 후배에게
모진 병고 시달림 뒤늦게 알아
시대의 격류 요란하다지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직 그녀에게 생명의 따스한 빛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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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얼마 전이다. 밀양에서 큰 불이 나서 제천에 이어 사람들 가슴을 아프게 하더니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불이 났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건 불을 다 끈 다음이다. 이번 불은 다행히 소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번지지 않았다는데, 그래도 소식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마침 아는 사람이 바로 그때 입원해 있었다.

혈액암에는 두 종류가 있어 특히 그 한 종은 고치기 어렵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후배가 그로 인해 고생하다 그 병원에 들어가 있었다. 조혈모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할 때쯤 학업에 대한 꿈을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다.

무슨 일인가를 겪으면서 사람은 평범하게, 평균적으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여름방학 지나 늦가을에 이르자 정신적 긴장이 극도에 다다른 나머지 밤에 발작적인 증세가 나타났다.

분명 꿈을 꾸고 있었는데 현실에서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부모님이 일어나 나와보니 내가 내복 바람에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우리집은 단독주택이었다.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만류하자 '몽유병' 환자는 기를 쓰고 바깥으로 뛰쳐 나가려고 했다. 서슬에 아버지의 러닝셔츠가 찢어지고 물어뜯는 바람에 팔뚝에도 피가 흘렀다.

이웃집 사는 아버지 후배까지 달려와서야 겨우 택시에 몽유인을 밀어넣고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한 병원에서 거부당하고 또다른 병원으로 향하던 중에야 몽유인은 겨우 꿈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가을,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오자 학교는 견디기 힘든 곳으로 변했다.

연합 서클이라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독서 동아리가 대전에 있었다. 남들은 공부하러 제각기 학교로 돌아간다는 3학년 봄에 몽유인은 본격적으로 서클활동을 시작했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도 읽었다. 그 무렵에는 다들 실존주의에 열을 올렸다.

5월이 되자 일요일을 빌려 체육대회를 했다. 남학생들끼리는 농구 시합을 했다. 전반전 끝난 휴식시간에 여자 후배 하나가 다가왔다. 내 셔츠에 운동장 흙이 묻어 있는 것을 말없이 털어주는 것이었다.

'운영전'을 보면, 안평대군 궁궐에서 글씨를 쓰던 김진사의 먹물 한 방울이 벼루 시중을 들던 운영의 손가락에 잘못 튄 것이 불타는 사랑의 도화선이 된다. 몽유인도 그날 이후로 정신이 없어졌다.

그때는 휴대전화는커녕 삐삐도 없었다. 집집마다 전화가 겨우 한 대 있고 전화비도 꽤나 아낄 때였다. 부모님이 주무실 때를 기다려 전화를 시작해서 그 집 시누이가 새벽밥 지으러 일어날 때까지 무슨 이야기들인가를 한없이 나누기도 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 바로 십대라는 나이대일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후로도 오래 계속된 등화관제라는 것도 있었다. 십대의 소년과 소녀가 제과점에서 나와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고등학교 담길을 걷는데 사방이 갑자기 완전한 어둠으로 변했다. 가로등이 모두 꺼져버린 것이다.

우산조차 하나를 쓰지 못하고 두 우산 속에 나란히 걷는데 무슨 다른 용기를 낼 수 있었으랴. 등화관제 그날조차 손과 손의 거리를 이겨내지 못했는데, 다른 날들이라고 무슨 사건이 가능할 수 있었으랴.

대학입학 시험도 보고 정신병 환자가 서울로 가는 게 결정된 후에 서클 지도 선생님 댁을 둘이 방문한 일도 있다. 흰 눈이 소담스럽게도 내리던 날, 그때 아직 총각이던 국어 선생님 하숙집을 찾아가 몇 시간을 함께 놀았다.

그러고 나서 어언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말수 적고도 다정한 후배에게 모진 병고가 찾아 들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세상 사람들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시대의 격류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정신병 환자는 다른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 이 후배에게 생명의 따스한 빛이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며칠 전부터 후배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끊어졌다. 그래도 이 수술 이후 나타난다는 숙주반응을 이겨내고 후배는 다시 웃는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