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목표 1순위로 두는게 문제
내 뜻대로 안된다는걸 인정하고
부자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더 벌기위해 애쓰는것 보다
자기삶 만족할줄 아는게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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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돈만 있으면 인생은 정말로 행복한 것일까? 그렇다고 돈을 무시하고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성경 구절 중에 신자들이 참 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자 청년에 관한 일화이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참고로 그 청년은 평소에 선행도 많이 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계명도 엄청 잘 지켰다). 그 질문에 예수는 "마지막으로 네가 가진 것을 전부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예수는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오는 것이 더 쉽다"라고 말씀하셨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참 갑갑한 이야기다. 어릴 적에 이 이야기를 듣고는 참 원망스러웠다. 그 부자 청년의 심정이 꼭 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나는 부자가 아니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다' 하는 자조(?) 섞인 생각과, '바늘 귀 못 빠져나와도 좋으니 부자 한번 돼 봤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교차했다.
솔직히 부자 되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만 해도 신부가 되기 전까지 가장 큰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필 어릴 적 옆집에 살던 친구네가 엄청난 부자였는데, 2층 양옥에 연못까지 있는 그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이런 집에서 하루만 살아보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죽 냄새가 폴폴 나는 커다란 소파에 몸을 묻고는 기필코 부자가 되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곤 했다.
신부가 되고 나서 그 마음은 옅어졌지만, 지금도 돈에 대한 욕심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한 말도 무작정 돈 욕심을 버리라고 한 뜻은 아니라고 본다. 예수가 묻고 싶었던 건 돈에 대한 그 청년의 마음가짐이었을 거다. 가진 것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베풂을 강조하기에 앞서 재물을 1순위에 두는 한 인생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돈을 추구하는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돈을 인생 목표 1순위로 두는 게 문제다. 돈은 좇는다고 잡아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설혹 잡았다고 해도 그 자체가 행복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주 부근 성당에 있을 때 4대강 개발 덕에 땅값이 평당 10만원에서 200만원이 된 곳이 있었다. 그 때 마침 내 지인과 그의 친구 몇이 그곳에 땅이 있었다. 지인의 친구들은 이때다 싶어 땅을 팔았지만, 내 지인은 땅값이 더 오르려니 하고 팔지 않았다. 땅값은 평당 400만원 까지 올랐고, 땅을 먼저 판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내 지인을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발 계획이 취소되면서 땅값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땅을 판 사람들의 술잔은 축배가 되었고 내 지인은 병을 얻어 입원을 하더니 급기야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재물에 대한 애착 때문에 고통을 당하다 급기야 죽음에 이른 것이다.
먼저 돈이 내 의지대로 안 된다는 걸 쿨하게 인정하자. 또 하나, 부자에 대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부자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은 돈을 늘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강남에 수백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어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쓴다면 부자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굳이 늘리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이 부자다. 즉, 부자는 스스로 자기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