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될 때까지 '스스로 보호 방법' 익혀
사고 반면교사 못 삼는 정책 외면 받아
다중이용시설 방독면 비치 의무화 제안
일본의 지진 골든타임은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입니다. 지진이 날 때마다 국민적 동요 없이 차분하게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은 늘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동경임해광역방재공원에서 그 비결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재해 위기관리 정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동경임해광역방재공원은 평상시에는 공원으로서 방문자를 대상으로 체험학습을 실시하지만 유사시에는 수도권의 종합컨트롤타워 역할로 기능이 전환됩니다.
필자를 포함한 경기도의원 3명은 지난 1월 대표단을 꾸려 지진 방재 대책을 살피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대표단 일행이 지진 체험과 교육에서 주목한 것은 골든타임의 현실성입니다. 매우 능동적인 알쓸신잡(?)이 담겼습니다.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이 매뉴얼로 상세하게 안내돼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으로 국민 누구나 체득하도록 운영합니다. 집에 있을 때와 지하철에 있을 때의 지진 대처 방법이 다릅니다. 혼자 있을 때와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을 때, 상황에 따라 대처 우선순위도 있습니다. 물, 가스, 전기가 모두 중지된 상태에서 한정된 물자로 사흘에서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세세했습니다.
붕대로 대용할 수 있는 검은색 비닐봉투 사용법이라든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신문지와 박스를 이용하는 방법, 운동화를 가장 먼저 착용하되 날카로운 파편으로부터 발을 보호하는 방법, 간이화장실을 만들고 처리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였습니다.
일본 가나가와현 안전방재국 재해대책과의 설명에서도 이들의 골든타임은 수동적이거나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지진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 중 첫째는 국민 개개인이 자기 자신의 생명과 위험을 스스로 케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역과 연계하여 협조할 수 있는 대비책, 세 번째는 행정(경찰, 소방, 자위대 등)의 인명 구출 시스템입니다. 스스로 보호하고 지킬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도 1순위입니다. 이렇듯 골든타임을 능동적인 시간으로 채운 것은 여간 부럽지 않습니다. 우리의 재난재해 현장에서 아쉬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천과 밀양의 화재 참사를 보면, 주요 사망 원인이 연기와 유독가스였습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화재 사망자의 73%가 연기질식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연기와 유독가스에 노출되면 15초 전후로 정신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이때 신속하게 수건 같은 것을 물에 적셔서 입을 가리는 행동으로도 구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런 간단한 방법도 익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사건사고를 반면교사 삼지 못하는 정책과 행정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최근의 화재사고를 접하면서 우리나라 골든타임도 능동적인 시간으로 내실화를 기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다중이용시설에 방독면(간이호흡기구) 비치를 의무화할 것을 제안합니다. 화재 시 연기질식 방지를 위한 방독면(간이호흡기구) 지원 검토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8년 용인고시원 화재를 계기로 다중이용업소법에 고시원과 산후조리원은 실마다 방독면(간이호흡기구)을 비치토록 법 개정을 추진하다 중단됐고, 이후에는 제품의 성능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유아무야 됐습니다. 방독면(간이호흡기구)의 보관 장소나 접근성, 3~5년의 짧은 내용연수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러나 골든타임에 실질적인 생명유지 수단이 준비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경기도의회는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다중이용시설에 방독면(간이호흡기)를 비치하기 위해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원포인트 의회도 열 계획입니다. 도민의 안전을 위한 일은 1초도 미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천재지변도 '골든타임'의 잣대로 보면 인재(人災)입니다. 그리고 인재를 만드는 것은 방심과 자만입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일본의 '골든타임'을 우리도 보고 배웠으면 합니다.
/정기열 경기도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