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평등·양극화 심화 등
만성질환 앓는 한국경제 위기
1400조원 가계부채라는 '지뢰'
한·미 금리 역전으로 신용 파산
外資유출로 터질 가능성 명심해야
![2018022101001477200072551](https://wimg.kyeongin.com/news/legacy/file/201802/2018022101001477200072551.jpg)
김영삼 대통령 당시에는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1993년 취임 첫날부터 "민족(북한)은 우방에 앞선다"고 미국을 자극했고 "일본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말로 일본과 최악의 관계를 자초했다.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한국에서 외환 부족사태가 터지자 일본 은행들은 제일 먼저 외화를 인출했다. 당시 40대였던 클린턴 대통령의 정부 당국자는 "IMF에 통사정해 보라"고 매정하게 압박했다.
'IMF 사태'는 당시 무능했던 정부와 차입 경영에 탐닉했던 기업들이 나라를 치욕스럽게 만들었던 과오였다. IMF 직후 1998년 한해 동안 한국인 자살자 수는 무려 8천662명에 달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299명보다 30배 많은 수치다. 직장을 잃은 가장과 파산 기업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시 외환위기를 야기했던 정책 당국자들은 '살인자'는 아니지만 '자살방조자'라 규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참회하기는 커녕 백주에 활보하고 있다. 당시 243만명의 시민들은 해고 태풍에도 장롱 속 아기 돌 반지와 금 패물을 모아 국가의 외채 상환에 앞섰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보도(2017년 11월 20일자)한 여론 조사는 충격적이다. 다시 외환위기가 닥쳐와도 '금 모으기' 같은 고통 분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38%로 나타났다. 동참 응답(29%)보다 훨씬 많다. '나라가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공동체 의식이 소멸 돼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 요인은 소득 양극화와 계층 고착화가 심해진 탓이다. 자신의 삶의 터전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데 공동체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토마스 홉스(1588~1679)가 일컬었던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외환위기는 한국경제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저 성장과 대량실업(특히 청년실업)이 구조화 됐고 기업의 위험 회피 성향은 커졌다. 비정규직 양산과 구조조정이 일상화 됐다. 청년은 안정적 공공 일자리에 매달리고 기업은 '창조적 파괴' 즉, 혁신보다 생존을 위한 '현상유지형 돈벌이'에 전념한다. 그 결과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 특유의 활력이 사라졌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 경제가 '주전자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쇠락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설문조사에서 한국경제 현황이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 같다'는 경제전문가가 88%에 달하고 탈출할 시간이 1~3년 밖에 남지 않았다(63%)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 경제는 20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외환위기 당시 투기 등급인 'B+'까지 떨어졌던 국가신용등급은 현재 중국·일본보다 높은 'AA'다. 외환보유액은 2017년 10월 현재 3천845억 달러로 세계 9위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는 높아졌고 외환위기의 재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아졌다.
그러나 향후 '제2 외환위기' 우려는 배제할 수 없다. 대외적 측면에서 현재 한국과 미·일 관계가 냉정하고 대내적으론 시급한 구조 개혁(특히 노동개혁) 대신 올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관련된 포퓰리즘 복지정책 난무로 국가재정의 건전성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노동생산성 저하, 혁신을 가로막는 정부 규제, 소득 불평등 및 양극화의 심화 등으로 인해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이라 진단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추락하는 순간 포식자(해지펀드)의 먹잇감이 되는 게 냉혹한 세계 경제 현실이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그동안 노동개혁과 재정 건전성 등에 대해 주장해 왔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2014년 7월 제2경제팀을 모아놓고는 "우리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그 길은 '지뢰밭'이다. 그 '지뢰'는 바로 1천400조원의 가계부채며 이 것은 조만간 한·미 간 금리 역전으로 가계신용 파산과 외국인 자본의 해외유출로 터질 수 있다는 점을 정책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임양택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