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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성(性)폭력 담론은 이중적이다. 피해의식과 가해의식 어디쯤이라서다. 역사적으로 반도 여성의 수난은 늘 성폭력을 수반했다. 병자호란 때는 수많은 조선여인이 청나라에 노리개로 끌려갔다. 곡절 끝에 환국한 여인들은 '환향녀(還鄕女)'로 낙인찍혀 멸시받았다. 일제 때는 식민지의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줄줄이 낯선 이국의 전선에서 희생됐다. 가난한 해방 한국의 소녀들은 미군 기지촌에서 국가의 방조 아래 성적 착취를 감수했다. 패전과 약소의 역사로 인한 여성의 수난사는 정조관념이 유난했던 한국인에게 남녀불문, 총체적 트라우마다. 한·일간의 위안부 문제 종식이 힘든 건 일본이 이를 간과해서다.

한국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역사적 부채 때문이라도 근·현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성을 존중해야 당연했다. 하지만 남성이 권력을 장악한 모든 분야에서 여성성을 유린하는 가해는 멈출 줄 몰랐다. 산업화 시대의 정치권력과 신흥자본의 성 의식이 그 수준이었다. 여성의 성이 상품으로 소비되는 시대가 그 시절 열렸다. 정인숙 사건 같은 권력의 성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재벌들의 여성 편력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성 주체성에 대한 여성들의 각성이 이루어지고, 성폭력이 인권의 시각으로 다루어지면서 성폭력은 이제 근절해야 할 악으로 규정됐다. 이 과정에서 정계, 법조, 재계 등 지도층 인사가 성폭력 사범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다. 오랜 기간 권력의 상층부를 구성했던 보수 인사가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인권에 반하는 보수적폐로 은유됐다.

최근 문화계의 성폭력 스캔들에 대중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문화영역은 산업화의 주역 보수진영에 대항하는 민주화 세력 진보진영의 보루였다. 문화영역은 권력의 압제에 저항하고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유효했다. 성폭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는 진보적 가치가 문화예술 영역에서 숙성되고 확산됐다. 그랬던 문화계의 진보권력이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 의해 전복되고 있다. 문화계의 '미투(Me too)운동'은 남성의 여성 가해 역사에 저항하는 한국 여성들의 전면전 선포 아닌가 싶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