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힘은 시나리오에서 나온다. 좋은 시나리오에 태작(태作)이란 없다. 토마스 메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그런 영화다. 좋은 시나리오 덕분에 2016년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받았다. 각본상은 물론이다. 영화는 보스톤글로브지 기자들이 거대 세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정신을 다룬다. 가톨릭 보스톤 교구 신부들 90여명이 조직적으로 아동성추행에 가담했다는 믿기지 않는 실화를 영화 소재로 삼은 것이 우선 놀랍다.
지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의 속을 파헤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쉬운게 아니다. 영화에서 스포트라이트팀은 두가지에 주목한다. 타락한 성직자와 그들이 저지른 아동학대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것. "사과 몇알 썩었다고 사과상자를 통째로 버릴순 없지 않은가"라며 교회는 저항하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성스러운 이름속에 감춰진 사제들의 추악한 얼굴은 드러난다.
문화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종교계까지 확산되면서 영화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졌다.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한모 신부가 아프리카 선교활동에 함께 간 신도를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남수단으로 봉사하러 온 여성 신자의 방에 강제로 들어와 "내 몸을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 달라"며 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막강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다. 쌍용차 사태, 세월호 비극, 한상균·이석기 양심수 석방 촉구선언대회 등에서 진리의 대변자로 자처해 온 인물이라 충격은 더 크다.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수원교구 교구장이 공개 사과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그건 대외용이고 정작 성당 신자들에겐 "사흘정도 보도거리만 없으면 이슈가 잠잠해 질테니 성당에 나오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고 한다. 더욱이 한 신부의 만행을 다른 2명의 신부가 알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팀장 월터는 이렇게 말한다. "다들 뭔가 있다는 걸 알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 끝을 내야 해. 누구도 이러고는 도망 못 간다는 걸 보여줘야 해!"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