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관행처럼 돼버린 대기업 총수 '깜짝쇼'
그들이 보여준건 '화장실 다녀온 뒤의 모습'
국민들의 반응은 '반기업정서'만 부추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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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올겨울의 동장군은 유난했다. 역대급 맹추위가 빈번하게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장롱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겨울옷들을 잔뜩 껴입어도 별로였다. 뒤뚱거리며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절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던가. 날씨가 추운 만큼 서민경제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가진 자들에 족쇄를 채우면서 서민들에게는 포괄적 복지와 저녁 있는 삶을 제공한다며 경기 진작에 팔을 걷어붙여도 윗목의 냉기가 전혀 가시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삼성이 느닷없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지난 7일 세계 1위의 삼성전자가 평택 고덕산업단지의 반도체 캠퍼스에 세계 최대 규모의 새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반도체 신규수요에 부응해 시장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무려 30조원을 투자해 기존의 1공장과 같은 규모로 2020년까지 완공한단다.

평택을 비롯한 경기남부권 주민들은 초대형 개발호재에 반색했다. 지난해 7월 평택 1공장 가동 후 1일 평균 1만2천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며 월평균 500억 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있었다는데 또다시 쌍둥이 공장을 건설하겠다니. 공재광 평택시장은 삼성의 2기 투자로 163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일자리 44만개 창출이 예상된다며 기대치를 높였다. 서민들이 설 대목을 거의 체감 못할 정도로 내수가 꽁꽁 얼어붙은 지경이어서 반가운 것은 사실이나 개운치는 못했다.

이 뉴스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석방 이틀 만에 발표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작년 2월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433억원대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된 지 353일 만에 2심 재판부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때문이다. 해방이후 최대의 정경유착 혐의를 정부가 너그럽게 용서(?)해준데 대한 사례인지 혹은 나라님도 못하는 경제 살리기를 재벌은 할 수 있다는 과시의 메시지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재벌총수들의 '깜짝쇼'는 오랜 관행이었다. 1966년 9월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협의가 세간에 불거지자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부랴부랴 한비 주식 전부(51%)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거듭 충격을 받았다. 국내최고 기업이 잡범수준의 밀수입에 연루되었다는 점이 첫 번째였으며 둘째는 개인기업의 오너경영인이 사회물의로 퇴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병철의 총수직 복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대 이건희 회장의 경우 2007년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에 따른 특검수사로 4조5천억 원의 비자금을 차명계좌로 숨긴 사실이 확인되면서 국민들은 또다시 경악했다. 이 회장은 1조4천억원의 사회 환원을 공언하며 총수직을 전격 사퇴했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건희 회장의 약속은 실천되지 않고 있다. 현대차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인된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8년 693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900억 원대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정몽구 회장을 수감 73일 만에 특별사면했다. 당시 정 회장은 8천400억원의 사재(私財)를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했으나 10년이 지나도록 장학금 지급, H-온드림 펠로 육성, 다문화가정 지원 등 이행실적은 2% 정도에 불과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2013년까지 해당 금액만큼의 계열사 주식을 정몽구재단에 넘겼으므로 약속을 이행했다고 언급했다. 언제까지 어떤 방법으로 환원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터여서 불감청(不敢請)이나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벌들의 언론플레이는 위의 사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두 푼도 아니고 거금을 흔쾌히 내놓기 어려울 것이나 지금까지 재벌총수들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행태는 화장실 다녀온 뒤의 모습이다. 세계유수의 명문기업 성장비결은 사회와의 원활한 소통이다. '깜짝쇼'는 국민들의 반기업정서만 부추길 뿐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