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남북관계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돌발적 해빙무드가 조성된 것은 특사외교의 성과였다. 1972년 5월 남한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특사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가슴에 청산가리를 품고 평양에 들어가 김일성 북한 주석을 면담했다. 동시에 북한에서는 부주석 박성철이 서울에서 박 대통령과 만났다. 극비리에 성사된 남북 특사 교환의 성과는 남북이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고 민족대단결을 도모한다는 공동성명 발표로 공개됐다. 서울과 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 이후 남북관계를 관리할 조치들도 뒤따랐다.
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한 남북 독재 정상이 벌인 이벤트는 남북 독재체제 강화에 악용됐다는 혹평에도,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한 첫 남북합의라는 역사적 의미가 가볍지 않다. 또한 공동성명의 기본합의는 이후 남북합의의 기초로 활용될 만큼 남북문제 해결의 기본원칙을 담고 있다. 실제로 남북 특사외교를 통해 재개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성안된 남북합의서인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김정일)'과 '10·4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노무현-김정일)' 모두 기본합의는 7·4 공동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5일 대북특사를 파견한다. 이번 특사는 이전의 대북특사와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전혀 다르다. 이전 특사들은 남북 평화공존과 같은 관념적이고 기본적인 주제를 다루었고, 남북 통치 수반들의 소통과 만남을 성사시키는 임무에 그쳤다. 반면에 이번 특사단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대화, 미·북대화의 실마리를 잡아내야 한다.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다"는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핵무장을 완료한 북한이다. 우리 특사단에 쥐어보낼 메시지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
특사단이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로 김정은을 면담할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 특사단과의 면담으로 국제외교 무대에 데뷔한다면 그 자체로 희망적인 메시지로 해석될 테고, 면담마저 불발되면 또 그 자체로 한반도 외교가 수렁에 빠질 수 있어서다. 특사단의 어깨에 걸린 역사적 임무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