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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찾는 이들에게 책을 무료로, 또는 정가에 비해 싸게 줄 수가 없다. 무료 기부행위로 선거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가보다 책값을 더 내는 것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현금으로 10만원을 내든 100만원을 내든 신용카드를 긁든 내는 사람 맘대로다. 더구나 출판기념회때 거둬들이는 수익은 신고 의무도 없다. 정치인 출판기념회 책값은 선거법과 김영란 법을 교묘히 비켜가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신이 났다.

정치인에게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다. 무한대로 모을 수 있다. 초청 인원 제한규정은 아예 없다. 유권자들이 제발로 찾아 오고, 거기에 정가보다 비싸게 책도 사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꿩먹고 알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다. 출판기념회는 정치인들이 누리는 최대 '특권'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에 목숨을 건다. 더러 세 과시용으로도 이용된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을 모으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정치인들도 출판기념회가 민폐에 적폐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부적으로 출판기념회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낯간지러웠던지 지난 19대 국회때 출판기념회 책을 정가에 팔도록 하고 수입 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하며 출판기념회 횟수를 제한하자는 '국회의원 윤리실천특별법안'과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유야무야 하다가 폐기됐다. 20대 국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에서도 책을 정가에 팔도록 하는 개선책을 내놨지만 그 이후는 감감 무소식이다.

이번 6 ·13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열려면 3월15일 이전에 끝내야 한다.선거 90일 이전에는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국적으로 같은 날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는 3월10일 토요일이 그런 날이다. 말 그대로 '슈퍼데이'다.독서율 꼴찌인 나라에서 출판기념회가 전국적으로 대거 열리는, 이런 코미디는 대한민국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