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실업·고용불안정 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 같은 환상보다
'국민성공시대' 같은 현실 택했던
국민들 뭔가 다른 생각하기 시작
물질적 욕구 다 채워졌을때
주어지는 덤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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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2년 대선주자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자정을 넘어 귀가하기 일쑤인 회사원들과 대학입시 학원을 전전하는 고3들의 노곤한 일상까지 다독여주는 따뜻하고 품격있는 슬로건이었다. 개인의 자유, 삶의 질, 공동체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탈물질적 욕구를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호소였다. 40줄을 넘어선 장년들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돌아 고이시는" 장면을 상상했을 듯하다. 영화 '원더'에서 '옮음과 친절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선택하라'는 말처럼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성적 정의 대신에 감성적 친절을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민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고, 그의 정의로운(?) 목표, 이른바 '747공약'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경제적 성공만을 목표로 국민들을 내몰았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자유를 앗아갔다. 외환위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발전지상주의를 불러들이면서 더 정의로운 사회적 가치이자 삶의 양식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더 자본주의적이고, 더 시장지향적이며, 더 경쟁지상주의적인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도덕적 경건함, 행복과 즐거움, 휴식과 평안, 가족과 공동체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도 시장과 경쟁, 사적소유와 빈곤, 서열과 차별 등이 더 자연스러웠다. 신에 대한 경배,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서, 자신의 죄악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공간인 교회에서는 더 많은 신도, 더 많은 헌금, 더 큰 교회당을 두고 경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빈소에서 그 자손들의 사회적 성공 네트워크를 드러내는 근조문구들이 경쟁한다. 결혼식장에서는 본인과 부모의 출신과 성공을 보여주는 화환들이 경쟁한다. 심지어 고단한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심신의 휴식을 취하려는 동호회 활동에서도 사회적 지위의 우열경쟁과 그에 따른 갈등, 심지어 운동능력의 차이를 둘러싼 과도한 경쟁과 차별, 구별짓기가 난무한다. 고교 동문회는 주식투자와 부동산 투기를 위한 정보교류의 장에서 경제적 성공에 걸맞은 감투를 흥정하는 투기판으로 변해간다.

그 와중에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올림픽 기간에는 항상 금메달 수와 (우리나라만 센다고 알려져 있는) 국가순위, 그리고 메달리스트들의 판에 박힌 성공담이 언론을 뒤덮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달랐다. 처음에는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를 압도하다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우리 선수들의 경기 자체에 온 국민들이 분노하고 환호하면서 몰입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성적 정의로움에 식상해 하면서 감성적 정서로 소통하는 모습은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 분노한 국민들은 의성 '팀킴'의 여자컬링에 환호를 보냈다. 이전에도 올림픽을 보던 국민들을 격분케 한 일들이 여럿 있었다. 쇼트트랙의 김동성, 펜싱의 신아람, 피겨의 김연아 등의 사례들은 선수의 속임수, 심판의 오심, 주최국의 정치적 영향력 등이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그 본질인 공정성을 앗아가 버린 사건들이었다. 이와 달리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국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저조한 실력이나 불공정성이 아니었고, 팀워크를 붕괴시킨 선수간의 불화와 그러한 사태를 촉발한 빙상연맹 내부의 파벌갈등이었다. 이에 반해 여자컬링은 5명의 선수들이 교환하는 눈빛과 열정적인 사투리를 들으면서, 국민들은 소외와 차별을 이겨내고 '하나의 팀'을 만들어낸 그들의 동지애와 노력을 느끼면서 더 큰 하나가 되었다.

선수들이 분열하면 국민들은 통증을 느꼈고 서로 화합하면 편안한 행복감을 느끼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게임에 승리하여 메달을 획득하면 온 국민이 열광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불공정한 상황에서 패배하면 분노하던 이전의 상황이 바뀐 것이다. 지극히 경쟁지상주의적이고 능력위주의 사회를 추구해왔던 국민들이 이제는 동일한 경쟁을 보면서 다른 가치와 느낌을 찾고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 사회적 양극화와 실업, 고용불안정 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 같은 환상보다는 '국민성공시대' 같은 현실을 선택했던 국민들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희망이 떠오른다. '저녁이 있는 삶'은 물질적 욕구가 다 채워졌을 때에 결과로써 주어지는 덤이 아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