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기회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 수립
기존의 사고방식·경험 탈피 전체시스템 변화 필요
인류 생존·번영 수수께끼 풀 실마리 찾을 수 있어


2018030701000509300023271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인천 부평구을)
머나먼 길이었다. 파리를 거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그리고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 세종기지까지 꼬박 33시간 비행기를 탔다. 지난 1월 23일 남극 현지에서 진행된 세종과학기지 준공 30주년 기념식에 다녀왔다. 30년 전 머나먼 남극에 기지를 세우기로 했던 혜안이 새삼 자랑스러운 현장이었다. 한국의 한파에 적응된 상태에서 맞이한 남극은 실제로 생각보다 따뜻했다. 기지 시설도 여러 번의 재단장을 거치면서 최신식으로 탈바꿈하여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남극 생활이 할 만하겠다는 나의 오만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정된 물을 나누어 쓰다 보니 제때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것은 사치가 되었고, 시시각각 바뀌는 날씨 때문에 외부활동을 뜻대로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먹을 것과 연구 장비들의 보급이 예정보다 몇 주나 늦어지면서 한동안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지냈다고도 했다. 남극에서의 삶은, 추위를 견디는 것 이상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필요로 했다. 기지를 지키고 있는 이들 역시 한국에 가족을 두고 온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새삼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남극에서 인간은 이방인이다. 과거 미지의 세계를 발견했을 때 범했던 실수, 무차별적인 파괴와 개발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데에 모두가 동의하면서, 남극에서의 인간 활동은 엄격한 기준 아래 이뤄지고 있다. 눈앞에 있던 귀여운 펭귄이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고 해도 자연의 섭리일 뿐 우리는 간섭할 수 없다.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 투성이인데도 많은 이들이 남극을 찾는다.

남극에서 보니, 빙하가 녹아 없어지고 펭귄이 살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종과학기지에서는 작년에 눈앞에 있던 빙하가 1년 만에 수십 미터 뒤로 밀려났을 정도다. 기후변화가 국내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와 닿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위험이 위협으로 체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기후변화의 재앙은 놀라운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인류가 존재한 기간은 지구 역사의 0.004%이다. 현세 인류가 출현한 20만년 중 농사를 지은 기간은 5%이며 전기사용기간은 0.07%에 불과하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온도는 0.74도가 상승했는데 만년동안 1도도 오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상승이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세계 경제가 저성장에 갇힌 이유가 기후변화 적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면서 글로벌 위험요인 중 중요한 요소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역시 지구평균온도 2도 상승 시 경제적 피해는 전세계 GDP의 0.2~2%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후변화를 늦추고 그에 대응하는 일은 사실 지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생존을 위한 일이다. 인류 문명은 이 같은 변화에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다. 경험하지 못한 혼란에 대비하고 취약함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를 위한 과제로 남는다.

대한민국은 기후변화 대응에 선두주자는 아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살아남은 인류를 호모 클리마투스(climatus)라고까지 표현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기존의 사고방식과 경험에서 벗어나 전체 시스템을 변화시킨다면 새로운 경제적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환경 관련 법률을 다루는 환경노동위원장으로서 지구기후변화의 최전방 남극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의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들이 그곳에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남극 내륙 더 멀리, 빙하 더 깊이 인류의 발길이 미치지 않았던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남들보다 먼저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지금도 가장 추운 남극의 세종기지에서 가장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을 응원한다.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인천 부평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