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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회담했다. 한반도의 허리가 끊긴 뒤 55년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간 첫 만남이다. 큰 형님격인 김 대통령을 깍듯하게 대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07년 10월에는 역시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 2차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의 호방한 웃음과 시원한 말투가 화제가 됐다.

김 대통령 방문길에는 신문·방송 등 언론사 대표들도 동행했다. 김 위원장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면서 남측 언론사 대표들과 팔짱을 끼는 등 파격 행보를 보여줬다. 경인·부산·대구매일·광주일보 4개 지방지 사장들도 함께 갔는데, 제외된 지방지들이 반발하면서 청와대 홍보실이 곤경에 처했다. 일정이 끝난 뒤에는 4개사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왕따'를 당하는 후유증을 남겼다. 노 대통령 때는 청와대 출입기자들만 동행했다.

북한을 다녀온 특사 일행이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전했다. 만남의 장이 평양이 아닌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이라고 한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게 된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 병사가 5발의 총탄에 맞고서도 이곳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다.

1·2차 회담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우리 정부가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막대한 돈과 물자를 북에 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북은 이 돈을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썼다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다.

3차 회담을 앞둔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명확한 의제를 논의한다. 평양이 아닌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 250m 지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국제무대 공식 데뷔전이다. 미북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관심이다. 김정은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밝혔다. 북한 옥죄기에 주력해온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도 일단 긍정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방북 특사 일행을 정중히 맞이했다. 만찬 뒤에는 차를 타고 떠나는 일행을 끝까지 배웅했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한반도의 봄기운이다.

/홍정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