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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집단속 음습했던 갑질들
개인 SNS에 의해 무참히 깨져
'미투'에 의한 운동 성별 경계 넘어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오만한 권력에 균열 냄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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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인
요즘 '미투(#MeToo)'의 바람이 거세다. "나도 역시 피해자"라는 눈물겨운 고백이 하나의 작은 촛불에서 시작 돼 이제 거대한 횃불처럼 번지고 있다. 검찰을 포함한 정부 기관, 연예계와 문학계, 극단과 대학교 등, 그 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심지어는 중고등학교와 국회를 거쳐, 저명한 정치가에게까지 번졌다. 이런 추세라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은 '성'을 매개로 한 부당한 행위, 따라서 성이 다른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의 차별에서 온 결과라고 보지 않는다. 대부분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을 때 벌어진 일들이다. 즉 남성이 우월한 권력을 갖고 여성을 지배하려고 한 데에서 온 잘못이다. 그러니까 이건 성을 사이에 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권력을 조장한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즉 권력에 의한 갑질이 원인인 것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집단은 곳곳에 있다. 예를 들어, 푸코는 병원, 학교, 공장 같은 곳을 주목한 바 있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부당한 의료행위를 했을 때, 약자인 환자가 보호받기란 쉽지 않다. 또 대학교수는 학생들의 장래를 결정할 힘을 갖고 있으므로, 학생은 부당한 요구를 받고도 이를 거부하기 힘들다. 일반 회사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고용주의 부당한 처사를 알면서도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진 이상, 이를 고발할 수 있는 직원은 많지 않다.

이렇게 권력 개입 여지가 충분한 사회는 사실 오늘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 구조는 산업혁명 이후 거의 이백 년, 우리나라에서도 1960~70년대 산업화 이후 오십 년이라는 긴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지금 문제가 터진 것일까? 이 현상을 짚어보는 것은 흥미롭고도 꼭 필요한 일일 듯싶다. '미투운동'은 한 개인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단 한 방에 불이 붙은 것이 아니다. 사회적 여건이 농축됐고, 휘발성 강한 연료들이 충분히 준비되어 왔다. 나는 이런 여건의 뿌리에는, 근대를 유지하던 '감시와 처벌'이 이제 약발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대는 집단과 위계를 만들면서 발전해왔다. 국가와 군대와 공장이 만들어지고, 지배와 피지배가 나누어진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이다. 이런 집단의 힘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굴복시킨다. 이런 것에 우리는 익숙하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이 단단해 보이던 그릇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근대가 지배 권력 중심의 사회라면, 이제 탈근대에 이르러 그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 즉 권력이 '유동적'으로 움직여 누구나 중심을 넘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탈근대의 중요한 무기가 된 것은 무엇보다 SNS이다. 지금 우리는 전통적 언론이었던 신문이나 방송보다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으로 더 빠르고 정확하고 친밀하게 소식을 듣는다. 단순히 뉴스를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산하고 배포한다. 각 개인이 중심이 되어 기존질서를 흔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담론들은 그 어느 언론보다 강한 흡인력을 갖고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성폭력을 포함하여, 집단 속에 숨어서 음습하게 행해지던 갑질들이, 이제는 SNS를 손에 쥔 개인들에 의해 무참히 깨지고 있다. 권력을 기반으로 한 야만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이다.

'미투'를 생산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이 운동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 대결로 한정 지어서는 안된다. 남성·여성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오만한 권력에 균열을 냄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 가도록 해야 한다. 모든 기관에서, 모든 학교에서, 모든 공장에서 권력을 앞세운 갑질을 끝내야 한다. 다중을 인정하고 타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미투'가 완성된다.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인다.

/정한용 시인